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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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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386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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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60[천지 창조]--횡설수설!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9-12-28 (토) 13:03 조회 : 302
[천지 창조]--횡설수설!


** 횡설수설--조리가 없이 이것저것 되는대로 지껄임.


예수교의 전지전능하신 신(神)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는데는 6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제삼자(필자)는 지금 "천지 창조"를 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금 즉시 독자들도 테스트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지 창조" 한 번들 소리쳐 보시라.
(각설하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태초(太初)에 여호와가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하시니라.] (창세기 1;1)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神) 여호와는 태초에 "무(無)에서 유(有)로 창조를 했다."고 한다. (예수교의 주장).
그러나, 바이블의 내용에 의하면, 무(無)에서 유(有)로의 창조가 아니라, 유(有)에서 유(有)로 개량 사업을 펼친 것으로 되어 있다.
여호와는 창조(실제로는 개량)를 하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5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를 1번, 도합 6번을 외친다.


바이블의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천지 창조(실제로는 개량)는 여호와가 스스로 영광을 받기 위해서 저지른 사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태초 이전에는 영광 없이 그 긴 시간 동안을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견디고 있었을까?
바이블 내용에 의하면, 태초 이전에는 무(無) 아니면 흑암(黑暗)으로 덮인 물 뿐이었다고 되어 있다.

전지전능한 신(神)이라는 자가 창조(사실은 개량)되기 전의 영원한 과거 동안을 영광 없이 무(無)와 흑암(黑暗)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 우주에는 태초(太初)라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태초 이전의 영원한 과거가 있었을 것이고, 태초 이후의 영원한 미래가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태초를 기준으로 창조되기 전의 과거와 창조 이후의 미래가 합쳐져야 완전한(?) 영원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영원(무한대)의 속성상 영원의 절반(1/2)도 영원이다. 
또, 영원(무한대)의 속성상 영원(무한대)은 시종(始終=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태초 이전의 영원한 과거를 <과거영원>이라 하고, 태초 이후의 영원한 미래를 <미래영원>이라 칭하기로 하자.
바이블에서 말하는 <태초>는 과거영원의 종점(끝)이며, 미래영원의 시작점이다.


<-----(과거영원)----------(태초)---------(미래영원)--------->

 ------------------------>* <---------------------------


과거영원(영원의 1/2)도 영원이므로 시작과 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는 분명히 저 먼 과거에서부터 태초(과거영원의 종점)에 도달되어 있다.
그렇다면, 태초를 출발한 여호와는 언젠가는 미래영원의 종점(시간의 끝)에도 도달할 것 아닌가?
여호와는 영원이란 시간 개념을 알기나 하고서 바이블 속에다 태초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 영원(또는 무한대)은 어느 쪽으로든 도달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의 1/2도 영원이다.
   따라서, 영원의 1/2도 어느 쪽으로든 도달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기 위해서 여호와는 과거영원(영원의 1/2)의 종점(태초)에 도달해 있었다.
   그렇다면, 태초(미래영원의 출발점)를 출발한 여호와는 미래영원(영원의 1/2)의 종점에도 도달하게 될 것 아니가?
   "영원의 종점(끝)에 도달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여호와는 과거영원(영원의 1/2)이라는 그 긴 시간 동안(실제로는 영원한 시간)을 영광 없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겨우 태초(과거영원의 종점)에 이르러 천지를 창조(사실은 개량)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일부 바이블에서는 <천지 창조>를 <우주 창조>라고 바꿔 놓고 있다.
그러면, 여호와가 창조했다는 것은 천지(天地)인가 우주(宇宙)인가?

(1) 우주(宇宙)란 시간과 공간을 합친 말이다. 그렇다면, 여호와가 창조했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까지도 포함된다는 말인가?
(2) 아니면, 시간과 공간은 원래부터 이우주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우주 속의 물질(또는 물체)을 만들었다는 말일까?

(1) 전자라면, 창조 전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을 텐데, 그 창조 전에 여호와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했으며, 영원이니 태초니 하는 시간 개념을 어떻게 사용할 수가 있었는가?
(2) 후자라면, 여호와도 시간과 공간 속에 꼭꼭 갇힌 자인데, 어떻게 전지전능일 수가 있는가? 여기에도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神)만의 그 어떤 섭리가 있는 것인가?


차라리, 예수교는 여호와(또는 예수)에게다 <영원>이란 단어를 붙여주지 말고, 이참에 여호와(또는 예수)는 365억 살을 살 수 있는 뛰어난 능력자라고 변명을 해 두는 게 더 편리하지 않을까 싶다. 대박!
그렇더라도, 여호와(또는 예수)는 예수쟁이들에게 1억 살 씩은 살도록 보장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을까?
얼마나 좋은까 예수쟁이들은? 부럽다. 젠장할!






[가난한 과부의 돈까지 싹 훑어 빨아 먹는 예수교]


먼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하루 품삯의 1/16이라함)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마가 12 ; 42~44)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소재의 여호와 신전에서 베풀어진 예수의 유명한 가르침이라고 한다. 아맹!


(1) 1,000억의 재산을 가진 사람은 900억을 누구에게 주더라도, 평생을 흥청망청 쓸 수 있는 100억이 남는다.
그러나, 가진 돈 전부가 1,000원 뿐인 사람은 그 1/10을 교회에 바치고 나면, 나머지 900원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부자가 풍족한 중에서 많은 돈을 여호와(또는 예수)에게 바친 것보다, 가난한 과부가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바친 것이 훨씬 값지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말이다.
가난한 과부의 어려움을 알았으면, 부자가 헌금한 풍족한 돈 중에서 그 일부를 집어내어 과부에게 나눠줬어야 옳지 않았을까?
그렇거늘, 자기 처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과부의 기복 신앙을 더욱 부추기는 예수의 하는 짓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2)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칼날로(바이블의 표현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의 목을 쳐 죽였다. 그런데, 그 잘린 목이 금방 다시 제 자리에 붙어서 살아난다.
따라서, 살인 현상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슬픔도 있을 수가 없다. 있다면, 죽을 때의 아픔에 대한 불안 정도일까?

고갈되지 않는 재산. 무진장의 재물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누구에게 내어주는 일을 하더라도 거기에는 특별한 의미(가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1개를 누구에게 주면 10개를 얻게 되는 세상에서는, 그 베푸는 행위는 도둑질과 같다. 10개를 얻으려고 1개를 내어준 셈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아는 자로서 "목숨을 바쳐 이웃을 돕는 짓" "10배 또는 100배의 획득이 있을 것을 알고서 1개를 누구에게 주는 짓"은 도둑놈의 심보 짝이다.
이상, 사실은 실험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예수교 식의 영원한 말장난에 맞장구를 쳐 본 것이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예수(교) 식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3) 목숨은 하나 뿐.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어, 그가 남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면 그 가치는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함이다.
재물을 유한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그 재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바쳐 이웃을 도왔다면 그 가치는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 보장된 예수, 전지전능이 보장된 예수의 죽음은 아무 가치가 없는 우스꽝스런 작태에 불과하다. 인간을 얕잡아 본 장난질(만행질)일 뿐이다.

여호와의 신전 또는 예수의 교회에 드나드는 예수쟁이라면 분명히 여호와(또는 예수)를 "아는 자"들일 것이다.
그 종교, 예수교는 "두드리면 열리고, 구하면 얻는 곳이며, 능치 못함이 없는 종교"이다.
아니, 구하기 전에 미리미리 알아서 채워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신을 모시는 종교이다. 부활과 영생과 완전이 거기에 있다.
그런 곳에서 "풍족한 중에 일부" 또는 "구차한 중에 전부"를 떠들고 있는 예수의 가르침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어리석고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처지조차 어떤 형편인지 구별도 못하는 주제에 많고 적고를 따지기 전에 헌금이란 것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여기에다 말도 안 되는 예를 들어가며 찬사를 보내고 있는 예수!
이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답답하고 기가 막힐 일이 또 있을까? 예수교는 가히 대단한 재주를 가진 혹세무민 집단이요, 복마전(伏魔殿=나쁜 일을 꾀하는 무리들이 모이는 곳)이 분명하다.


(4) 어떤 사람은 풍족한 삶을 누리고, 어떤 사람은 과부가 되어 구차스런 삶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죽은 과부의 남편, 그들 사이에 태어났을 자식들의 갖은 비참한 삶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 힘 센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은 이런 짓을 하라고 그런 힘이 주어졌는가? 말도 안돼.

상징적으로 더 많은 헌금을 낸 과부나, 적은 헌금을 낸 부자나, 어차피 천당에 갈 것은 뻔하다. 믿음으로 의로워져서 천당행은 자연뻥이기 때문이다. (예수교 교리임.)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부자에 비하여 결손 가정을 이끄느라 고달픈 삶을 가진 과부의 억울함은 어떤 보상을 받게 되는가?
장차, 천당에 가서 그 부자보다 가난한 과부가 더 큰 보상을 받는가?
그렇다면, 그 천당도 계급 사회 아닌가? 그러나 저러나 일찍 죽은 과부의 남편은 여벌 들러리인가?


(5) "영생 복락"이 보장된 사람의 언행은 그것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그것은 악(惡)일 뿐이다.
물론, 예수쟁이 중에서 자기 재물과 목숨으로 불우 이웃을 도왔다면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은 있다.
그러나, 이 혜택 관계는 "인간 모독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에 대한 의미는 독자들의 몫이다.

신(神)이 부정되는 상황에서는 불우 이웃을 돕는 일은 대단히 훌륭한 행위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여호와 또는 예수)에 의한 계획으로 불우 이웃을 형성시켜 놓고서 이 불우 이웃을 도우라는 가르침은 "신의 만행질일 뿐이다."

신(神)의 가르침은 인간(人間)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신의 것이 아니라 종교 사기꾼, 어리석은 대중을 착취하고 굴종시키려고 종교 사기꾼이 날조한 조작극임을 알 수 있다.


(6) 예수쟁이들 중, 많은 수는 명예욕(그것도 명예로 느끼나 보다)으로 또는 옆 사람에 대한 체면 때문에, 무리한 액수를 헌금하고서 허덕이는 생활고를 겪는다.
그러나, 목사나 신부 중에 무리한 액수로 헌금을 한 신도를 향해서 "당신은 무리한 액수를 헌금했습니다."하면서 헌금한 돈 중, 일부를 되돌려주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예수가 가르쳐 준대로 가난한 과부의 전 재산까지 악착 같이 훑어내는 짓에 이골이 난 예수교의 지도자들! 멋져부렀다!




[힘든 일 남 시켜 놓고 저는 놀고 먹겠다?]


같은 내용의 말(또는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남자가 할 때와 여자가 할 경우가 다르고, 어른이 할 때와 아이의 경우가 다를 수 있다. 
역시, 같은  내용의 말(또는 행도)이라도 부모의 경우와 자식의 경우도 사뭇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말(言)과 행동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상황과 형편은 사람에 따라 그 경우는 아주 크게 달라진다.


날품팔이 막노동으로 살아가는 부모가 아들 혼인식을 준비하면서 사글셋방으로 세간을 내 주었다. 그런데도, 아들과 며느리는 마냥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며느리는 생각했다.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무식한 시부모인데도 자기(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고, 사글세일망정 신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는구나."라고.

수 천억을 가진 어느 재벌 총수가 아들과 딸들의 신혼 살림에 근검 절약을 교육시킨답시고, 사글셋방으로 세간을 내 주었다. 
그 후로도 절약 정신을 교육시킨답시고 단돈 한 푼 보태 주지 않았다. 이 문제는 마침내 아들과 아버지는 물론 마누라와 딸들까지도 불만을 폭발시켜 법정으로 비화되었다.
어느 날, 갑짜기 재벌 총수는 죽고, 그의 뒤를 이은 자식들은 아직도 서로 원수 이상의 원수가 되어 법정까지 드나들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사글셋방에서도 마냥 행복한 경우가 있고, 대권 같은 집에 살면서도 지옥 같은 삶의 경우가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 , 
긍휼이 여기는 자는 ..... , 
마음이 청결한 자는 ..... , 
화평케 하는 자는 ..... , 
의를 위하여 핍박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예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일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태 5;1~12)


예수(또는 여호와)는 가난뱅이 날품팔이 막노동꾼이 아니다.
예수(또는 여호와)는 백만장자니 재벌의 총수니 또는 고관대작이니 하는 정도와는 아예 급이 다른 신(神)이다.  
예수(또는 여호와)는 일반 잡신하고도 급이 달라서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전지전능자이다.
이런 예수(또는 여호와)가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삶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또는 여호와)가 인간에게 제시하는 천당 조건(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심령이 가난하라.
2) 애통하라.
3) 온유하라.

4) 의에 주리고 목말라라.
5) 긍휼이 여겨라.
6) 마음이 청결하라.

7) 화평케 하라.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라.
9) 예수를 인하여, 욕먹고, 핍박받고, 거짓을 당하라.

저게 저것이고, 그게 그것이고, 같은 내용의 말을 이렇게 저렇게 둘러쳐서 변형시킨 말들의 반복이다. 
어쨌든, 얼른 듣기에는 제법 훌륭한 말들 같기도 하다. 
물론, 사람끼리 주고 받는 말이라면 꽤 괜찮은 말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터럭 만큼도 부족함이 없이 우주 전체를 소유하고 있는 신(神)이라는 녀석이 되어가지고서 왜 인간에게 저런 고통들을 요구하고 있을까?
인간은 자기 스스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인간은 여호와(또는 예수) 쪽에서 일방적으로 동원시켜 놓은 존재이다. 예수교(바이블)의 주장에 의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렇게 멋모르고 동원된 인간에게 왜 저렇게 고통스런 조건들을 강요하고 있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들려 줄 때, 제법 근사한 내용의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저런 가르침들이 인간끼리 주고 받는 것들이라면 대단히 훌륭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것이 "예수(神)가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라고 해 놓은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


차분하게 생각을 해 보기로 하자.

인간 쪽에다 저와 같은 고통과 어려움을 모두 떠넘겨 놓고서....그러면 예수와 여호와는 무엇을 하려는가? 
멋모르고 태어난 연약한 인간은 저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걸머지고 허덕이게 하고서,,,그러면, 전지전능한 신(예수=여호와)은 놀고 먹겠다는 말인가? 왜, 인간이 그런 일을 해야 되지?
왜, 인간이 그대(여호와=예수)들의 활동에 휘말려서 참고, 견디고, 애통하고, 핍박받고, 욕먹고, 고통받으며 살아야 되는가?


그대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요, 그대들이 다스리는 세상인데, 그리고 그대들은 전지전능이요, 사랑이요, 공의요, 절대요, 진리라면서 하는 짓이 겨우 어리석고 무능한 인간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워 놓고서, 착취해 먹는 짓이나 하겠다. 겨우, 이런 짓이나 하겠다는 말인가?


위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은 신(神)의 말이 아니라, 예수교가 그런대로 종교 구실을 하면서 혹세무민(惑世誣民)을 하자면 필요했던 악마들의 속임수에서 만들어진 내용일 뿐이다.
예수의 말을 백 번 천 번을 읽어 봐라.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이렇게 실천될 수는 없고, 듣기에만 좋은 말은 예수교의 가르침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부모 형제와 처자식과 전 재산을 모두 버리고 예수를 따르라."
"일흔 번 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항상 기뻐하라." 등등...... 

실천할 수 있고 없고는 상관 없다.
그냥 듣기 좋은 말만 많이 있으면 좋은 종교, 훌륭한 종교, 예수교이다.
사람에게는 조금도 필요 없고, 오직 신(神)들끼리나 으쓱거리며 우쭐대는 예수교의 허황된 가르침들....
언제 쯤에나 저 쓰레기 예수교가 박멸되려나? ㅎㅎ 아맹 할렐루야! .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9-12-28 (토) 13:05
["이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예수]


"이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고 한다. 예수의 말이다.
그러면서, 제 놈(예수=여호와) 자신을 믿어 달라고 떼를 쓰고 이유는 뭘까? 되는 경우일까? 세상에나!

그래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예수)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예수)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예수)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마태 24;3~28)


(1) 많은 사람이 와서 서로 자기가 예수라며 미혹(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림)할 것이란다.
그런데,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게 예수의 신신 당부이다. 세상에 이렇게 고약한 짓이 있을 수 있는가? 

참고; 여기에서 <많은 사람>이란 바로 목사(또는 신부)를 비롯한 예수쟁이들일 것이 분명하다.
        비(非) 예수교인 또는 다른 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전도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하철, 길거리, 광장 등등의 장소는 물론 교회 안에서 떠들어지는 전도 및 설교 등은 예수쟁이들의 전유물이다.
        그런데, 이들 예수교(쟁이)에 의하여 떠들어지는 어떤 것에도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쟁이들의 말은 어떤 것도 따라서 안 된다. 큰 일난다. 예수의 말이다.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예수의 말이다. 대박!


(2) "'보라. 예수가 여기 있다.' 혹 '예수가 저기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
또는 "'보라. 예수가 광야에 있다.'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예수가 골방이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
그러면, 도대체 어쩌라는 말일까?
 
오늘 날, 세상에 난립되어 있는 예수교 종파는 35,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 종파들은 모두 서로 자기가 정통파라고 으르렁대며 대가리 박터지게 싸우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은 어떤 놈이 진짜 예수인지 몰라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렇게 더럽고 악독한 짓이 그렇게 관람할 만한가? 꼭꼭 숨어 있으면서 그게 뭣하는 짓일까?

사람의 천당행 지옥행을 이런 식으로 판가름해야 되는가? 아서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그 뜨거운 유황불 지옥에는 예수(또는 여호와)가 제일 먼저 들어가야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예수(또는 여호와)를 쏙 빼닮은 예수쟁이들이 뒤따라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3) 제삼자(필자)는 4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신학(종교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어느 목사에게 다음을 질문했었다.

"예수가 여기 있다고 하여도 속지 말고, 저기 있다고 하여도 현혹되지 말라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처신해야 되겠는가?"

그렇지만, 그 목사(박사) 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참 후에 제삼자(필자)가 계속해서 첨부하여 질문했었다.

1. "교회고 어디고 가지 말고, 골방에 홀로 앉아서 신앙 생활을 하라는 말인가?"
2. "또는 썩었건 말았건, 어느 교회를 한 번 정했으면, 평생 동안 그 교회의 귀신이 되라는 말인가?"
3. "아니면, 어디에 진짜 예수가 있는지 그것을 찾아서 이 교회 저 교회로 전전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했었다.

그래도, 그 목사(박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4) 인간은 신(神)을 알아 낼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그래 안 그래?
이렇게 무능한 인간을 상대로 장난치는 악마가 어떻게 신이란 말인가?

책임(責任)은 권한(權限)이 있을 때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권한(신을 알아 볼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책임(신을 믿고 받드는 일)을 묻고 있는 예수(또는 여호와)는 재대로 생겨 쳐 먹은 신일까?
예수(또는 여호와)는 과연 신의 자격을 가진 녀석일까? 헐!


(5) 예수교(쟁이)들은 100%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神)의 섭리가 아니라, 사람 스스로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교(쟁이)들은
1.자신도 속이고, 2.사람도 속이고, 마침내, 3. 신(神)도 속이며, 평생을 살아 가는 사기꾼들이다.
이보다 더 무섭고도 큰 죄가 있을까? 따라서, 예수쟁이들은 반드시 100% 다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대박!


참고; 예수쟁이들의 삶을 "신앙 생활"이라 한다. 다른 말로 믿음 생활이라 한다.
        그러나, 진짜 예수쟁이라면 "불신앙 생활"을 해야 옳다. 왜냐 하면,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가 신신 당부하는 진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아멩!
        알아 들었는 지 모르겠네. "불신앙 생활" "어떤 것도 믿지 말라." 이것이 진짜 예수쟁이의 길이다.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고 떠드는 녀석이 "나(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니, 이런 걸 아이러니하다고 하던가?



우스개 얘기 하나!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기 학급 아동들에게 숙제를 내 주었다. 다음 날, 숙제 검열 시간이 되었다.
거의 모든 아동들이 맞은 답이건 틀린 답이건 간에 숙제를 해 왔다.
그런데, 한 아동 만은 그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 예수를 착실하게 믿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왜,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니?"
"어제, 저녁을 먹은 후, 숙제를 하려고 책가방을 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숙제를 어찌나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숙제를 하고 싶을 때, 숙제를 했으면 됐을 텐데 왜 하지를 않았느냐?"
"그 때,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숙제를 하고 싶은데 그것을 하지 않고 참느라 혼났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참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신앙 체험]


* "예수교는 체험의 종교이다."라는 말이 있다.


바울은 누구인가? 바울이 없었다면, 예수교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어쨌든, 신약(예수교 경전)의 27개 문서(또는 서신) 중 자그마치 13편이 바울에 의하여 씌어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을 정도이다. 
이는 예수교에서 바울이 차지하고 있는 무게감을 나타내고 있는 중대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신약은 그 배열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글(書信)이 먼저 씌어지고, 그 다음에 마가, 마태, 누가, 요한 등의 예수의 일대기가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바이블(예수교 경전)의 신약은 바울의 종교관이 먼저 태어나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아들 예수 얘기가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란 말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예수쟁이는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 급 목사(또는 신부)나 소위 신학자라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상, 예수교는 "예수교"라 하기보다는 "바울교"라고 해야 더욱 정확한 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바울은 4번에 걸쳐서 여러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강행한 자이며, 예수교를 대제국 로마의 심장부에 그 씨를 뿌린 자이기도 하다.
마침내, 예수교가 중동 지방의 조그만 구석에서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할 수 있는 밑 거름을 만든 자가 바울이었던 것이다.
바울은 전도 여행 중, 안디옥(Antioch)이라는 도시에서도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여기에서 예수쟁이(Christian)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한다.

어쨌든, 바울은 신약(新約=바이블)의 거의 절반을 기록하여 남긴 자이다.
이 사실이 바로 예수교가 무서운 사기꾼 집단 노릇을 하게 되는 요소이다.
(각설하고)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쟁이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잡아죽이기까지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던 그가 어느 날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한 후, 예수교 최대의 사도(使徒)가 되어 찬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마침내, 예수의 수 제자였던 베드로보다도 바울이 더 유명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바울 없는 예수교는 성립될 수가 없다."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 쯤에서 바울이 예수를 만나는 신앙 체험담을 들어보기로 하자. 바울이 예수를 만난 것은 예수가 죽은 후 부활하여 승천한 뒤의 일이다.
바울의 원래 이름 즉, 예수를 만나기 전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울은 원래 예수교를 핍박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울(바울)이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잡아죽이며 살기가 등등하던 때에, 사울이 그의 
일행들과 함께 다메섹(다마스커스)으로 여행을 가던 도중이었다고 한다.
이 때, 죽은 예수가 사울(바울) 앞에 나타났던 모양이다. 이것이 바로 사울(바울)의 신앙 체험담이다. 대박!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바이블은 예수교의 모든 것이다. 바이블 밖에서 떠들어지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예수교(여호와=예수)가 아니다. 아멩!


1) [(바울=사울)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예수) 가라사대, "나는 네(바울)가 핍박하는 예수라. .........."
(바울과)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도행전 9;5~7)


2) [내(바울)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예수)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예수)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사도행전 22;8~9)

* 위의 2개의 바이블 구절은 바울이 신앙 체험으로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을 바울이 직접 고백(설명)하는 모습이다.
둘 다 바울이 예수를 믿게 된 사건(장면)을 설명하는 신앙 간증이다. 둘다 같은 사건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바울(사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1)번에서는 예수의 말 소리만 듣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2)번에서는 빛은 보면서도 예수의 말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같은 장면 즉, 바울(사울)이 예수를 만나는 신앙 체험 장면의 상황이 정반대로 아주 다르게 간증되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이렇게 엉터리로 신앙 체험을 하고서 예수쟁이들을 잡아 죽일 정도로 예수교를 핍박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극단적인 예수의 앞잡이로 돌변했다 이거지? 헐! 아니, 대박!

"예수교는 체험의 종교이다."라고 말해진다. 그래서, 바울처럼 자기 신앙 체험을 발표(간증)하는 예수쟁이들도 많다.
그런데, 말이다. 바이블(신약)의 거의 절반을 써서 남겨 놓기도 하고, 
예수교를 세계적인 종교가 되도록 터전을 만들기도 하고, 
예수교인에게 "예수쟁이"라는 전문가적(?) 이름이 생겨나도록 활발히 전도 활동을 했던,
바울의 신앙 체험(또는 간증)이 이렇게 엉터리로 기록되어 있는 현상을 무엇이라 변명하겠는가?

(간증--자기의 신앙생활에서 얻은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고백하는 짓) 
 
거두절미하고, 예수교 최고 최대의 사도(예수의 앞잡이)로 불리는 바울은 없던 존재(허구=가짜)이다.
그렇다면, 없던 존재(허구=가짜)가 증거하는 예수 및 여호와는 무엇일까? 
0 * 1,000=0이며, 허구 * 1,000도 허구이다. 거짓말을 아무리 많이 모아놓더라도 결국은 모두가 거짓말일 뿐이다. 그래 안 그래?

예수교의 신 여호와 및 예수는 허구(가짜=거짓=0)이다. 더 긴 설명이 필요한가?





[즐거운 성탄절! Merry Christmas]-대박!


"대역 무도한 죄인을 제외하고,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왕자가 태어난다든지, 나라에 어떤 커다란 경사가 발생하게 되면 위와 같은 임금님의 어명이 떨어지게 되어 옥중의 죄인들에게도 은혜와 혜택이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예수교의 신 여호와의 아들 예수가 구세주(救世主)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나던 날, 2살 이하의 사내 아기들이 도륙을 당했다고 한다. 대박!

이 비극은 오래 전에 여호와가 계획을 세우고,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을 해 두었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라며 바이블(=예수교)은 우쭐거리고 있다.
장차 인간에게 있을 불행을 미연에 예방해 주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을 계획하고 예언까지 해 주고서, 그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출썩대며, 자기의 점괘가 맞아 떨어졌다고 자랑하는 여호와!

세상에 이런 못돼 쳐 먹은 악신(惡神)이요 잡놈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에나!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한 장면을 보기로 하자.


[이에 헤롯(왕)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2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야곱의 처)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더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 2;16~18)


예수가 태어나던 날, 베들레헴(이스라엘의 지명)과 그 원근 일대의 2살 이하 사내 아이들이 국왕 헤롯에 의하여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날벼락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위에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은 태초에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해 놨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은 "3포다" "5포다" 또는 "헬조선이다" 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이 됐지만, 옛날의 인간 세상은 어느 곳을 막론하고 집집마다 어린 아기가 없는 가정이 없었다.
따라서, 예수란 녀석이 태어날 당시,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일대에서는 자식이 죽임을 당하지 않은 집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아멩 할렐루야!


그래서, 죽은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소리가 천지을 진동했다는 것이다. 죽은 아기들도 불쌍하지만 그 유가족들의 슬픔은 무슨 이유일까?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인간이 감당할만큼만 시련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비극들이 인간이 감당할만한 시련들일까? 헐!
사랑이 많은 신이라고 알려진 여호와는 세상을 이런 식으로 다스려야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여호와는 욕을 한 번 더 얻어 쳐 먹어야 되지 않을까?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악마(惡魔)요 아주 못된 잡놈이다."라고 하면 제대로 된 욕말이 된 것일까?"


여기 쯤에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하나 더 보기로 하자.


[(천사가 이르되) "오늘날 다윗(이스라엘 최고 최대의 명군)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가 나셨으니, 그리스도 주(主)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수량이 매우 많고 흔한) 천군(天軍)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신(神=여호와)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천국?)에서는 신(神=여호와)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 2;11~14)


예수가 인간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지극히 높은 곳(천당?)에서는 여호와에게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들레헴 원근 일대에서 도륙된 2살 이하 사내 아이들과 불행 속으로 빠져 든 그 유가족들이 바로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미운 털 박힌 종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래 안 그래?

2살 이하의 아기라면, 자기 의지가 아직 없을 때이다. 따라서, 그 아기들에게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죄의식>이란 것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태어나던 날 무참하게 도륙된 아기들이 여호와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부득이 또 한 번 욕을 더 얻어 쳐 먹어야 되지 않을까?
"여호와는 신(神) 아니라 신의 할애비라 하더라도 미친 잡놈 중의 잡놈이다." 
"기준과 원칙이 없는 불한당 같은 악마"라고 불러도 예수교의 신 여호와에게 주어질 그 호칭은 부족하다 하겠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말이다. 위의 모든 것(바이블 내용)은 허구(가짜=것짓)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기로 하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예수교의 모든 것이 가짜요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또 보기로 하자.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태 2;1~3)


(1) 옛날 왕권 시대에 어떤 아기가 하나 태어났다. 이 때, 어느 도인이나 점장이가 나타나서 "이 아기는 장차 임금이 될 상이다."라고 선포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아기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 민주주의라든지, 인권과 언론의 자유 등등이 아직 확보되지 않았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이유 불문 그 아기는 죽여지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2,000여 년 전, 동방으로부터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왔다는 박사들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천치 바보들이었던가?
동방박사들은 유대의 국왕이 머무는 도성인 예루살렘성에 들어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렇게 공표해 버리면, 그 결과는 예수를 경배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죽이려고 온 것인가?

이렇게 상황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동방박사>라는 칭호도 어울리지 않고, 별을 보고 먼 동방으로부터 왔다는 말도 웃기는 상황이 되고 만다.


(2) 북쪽 지방 멀리(약 150km)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 부부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게 된 것은, 로마 황제의 명을 따라 호적을 하기 위하여 여행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베들레헴은 잠간 동안 머문 곳으로 여기에서 예수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이 곳 베들레헴으로 경배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그 <동방>이란 것이 베들레헴 <건너 동네>라는 뜻인가? <건너 동네>에서 온 사람을 가리켜서 <동방>에서 왔다고 하는가?

미국에 살고 있는 A라는 사람이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 B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래서, A는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B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B는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기 위하여 동사무소에 가고 집에 부재 중이었다. 그래서, 전화는 B의 아내가 대신 받았다.

이럴 경우, 미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는 A는 B를 만나기 위하여 B의 집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동사무소로 찾아가야 되는가?
같은 의미에서, 예수의 출생을 축하 하러 오는 동방박사들은 예수 부모의 본거지인 나사렛(거주지)으로 가야 되는가, 아니면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하여 잠시 여행 중인 베들레헴(동사무소)으로 찾아가야 되는가?

동방박사라고 할 때, <동방>은 적어도 바로 이웃인 건너 동네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동방이란 상당히 먼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낙타를 타고(?) 왔을 것 아닌가?
그래서도, 예수의 태어남을 경배하러 왔다는 동방박사들은 동사무소 격인 베들레헴이 아닌 거주지인 나사렛이란 동네로 찾아 왔다고 했어야 되는 말이다. 그래 안 그래?


(3) 특히, 유의할 것이 있다.
"헤롯왕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하여 2살 이하 사내 아기들을 모조리 도륙시켰다."는 말은 이 사건이 적어도 2년에 걸친 사건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더 더욱 동박박사들은 임시 여행지인 베들레헴이 아닌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으로 경배를 왔어야 된다. 호적을 올리기 위한 여행이 1~2년 씩 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왔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서울에서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은 대전이나 부산에서도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이 될 것이다. 따라서, 별이 머문 곳에서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태어난 집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별이 낮게 떠다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변명하는 예수쟁이가 없으란 법은 없다. 그러나, 낮게 떠 다니는 불을 별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을 사람들은 <불똥>이라고 하는 것이며, <별>과 <불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4)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 될 상이다."

이 예언을 헤롯왕이 믿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헤롯왕은 그 예언을 받고 태어난 정적(政敵) 예수를 찾아 내어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이하려면 상당히 높은 고도의 추리력이 필요하다.


(a) 만약, 헤롯왕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예언을 믿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 예언은 전지전능한 신(神=여호와)의 예언이라는 것도 알고(믿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헤롯왕이 감히 여호와의 아들인 예수를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신을 믿는(아는) 사람으로서 신을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그런 간덩이 부은 사람도 있을까? 헐!

(b) 반면에,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다." 이 여호와의 예언을 헤롯왕이 믿지 않았다고 하자.
이럴 경우, 금방 태어난 아기가 죽여야 될 정적(政敵)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금방 태어난 예수 하나만을 쉽게 찾아 낼 수 있다면, 국왕의 권세로서 그 어린 생명 하나 쯤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들레헴과 그 원근 일대의 2살 이하의 수 많은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야 되는 일을 감행한다는 말인가? 실성한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신(神=여호와)의 예언을 믿는 사람은 감히 예수를 죽일 수가 없는 것이며 또,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믿지 않는 사람도 구태여 금방 태어난 예수를 정적으로 몰아 죽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한 두 명 정도를 죽이는 것으로 정적을 제거할 수 있다면 모를까, 2년에 걸쳐서 수천 수만 명의 아기들을 도륙시키는 미친 짓으로 정적을 제거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지랄발광으로 날뛰는 비극의 극치를 달리는 사건을 가지고 수 천년 동안 "Merry Christmas"를 외쳐왔단 말인가? 이게 제대로 생겨 먹은 사람의 할 짓이란 말인가? 세상에나! 대박이로다?
제삼자 2020-01-12 (일) 01:52
[예수의 명쾌한 썰]


** 명쾌하다--조리가 분명하여 마음이 후련하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두 사람이 증거하면 참되다."는 말이 있다. 예수가 직접 떠들어대고 있는 썰이다.
예수가 떠들고 있는 썰은 맞는 썰일까? 그러나,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엉터리요 헛소리일 뿐이다.
현재, 지구 위의 인구가 70억이 넘는다고 한다. 이 지구 위의 70억 명이 떼거리로 증거하더라도 참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는 게 많다.

예수교는 수 천 년에 걸쳐서 수 많은 예수쟁이들이 순교했기 때문에 이것으로 자기네 예수교가 참이라고 으스대는 예수쟁이들이 많다. 이것도 어림 없는 썰이다.
예수교의 경전이라는 바이블은 77,000줄로 씌어진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여기에 <참>은 1줄도 없다. 썰 같은 썰이 단 1줄도 없다. 

지금부터 조금 지루하지만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이라는 예수 녀석의 썰을 음미해 보기로 하자. 그러자. 예수교(쟁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일이다.
바이블에 죽 연결된 썰이므로 어쩔 수 없이 두서 없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바이블 내용(신의 말) 자체가 두서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수의 썰 제1
]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요한 8;12~13)


자기 자랑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떠들어대는 녀석은 이 세상에서 예수(또는 여호와) 말고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예수 녀석은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예수 녀석을 따르는 예수쟁이들은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된다고 한다. 얼쑤!
그러나, 예수쟁이들 중에 과연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이란 것을 얻은 자가 있던가?

지금 당장의 22억 명이나 되는 예수쟁이들의 모습은 물론, 
지난 수 천 년 동안 수 백 억 명의 예수쟁이들이 만들어 낸 예수교 역사가 통째로 악독과 시궁창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모습이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은 예수교의 모습"인가? 헐!

예수가 떠들어대는 소리가 바리새인들의 귀에도 거슬렸던 모양이다.
여기에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바리새인이란 율법학자를 지칭하는 말로, 형식만을 중시하여 본질을 해치는 위선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여기면 된다.

예수와 예수쟁이들은 자기가 바리새인과 달라서 스스로를 위선자도 아니고 진보적이며 융통성이 있게 살아간다고 자화자찬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고집불통에다 보수적이며, 젊으나 늙으나 <꼰대 기질>로 똘똘 뭉쳐져 있지 않은 예수쟁이가 있을까? 그런 주제에 바리새인을 흉보는 예수쟁이를 보노라면.....

예수의 썰을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따져 물었던 모양이다.
["예수야, 네 자신이 너를 위하여 증거하고 있으니, 그것이 어떻게 너를 증거할 수 있단 말이냐? 네 자신이 너를 증거는 짓은 참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냐?"] 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예수가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이 세상의 빛이요,  여호와(神)의 아들이라고 떠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예수)를 따르는 자는 천당에 간다."고.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말했다.
"네(예수)가 너(예수)를 증거하는 썰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그것을 참이라고 하기가 어렵지 않느냐?" 고.

분위기가 이쯤되면, 
예수는 여러 사람이 터득할 수 있도록 확실한 무엇을 보여 주어야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계속해서 더 보기로 하자.


[예수의 썰 제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요한 8;14)



무슨 답변(대화)이 이러할까? 마치, 오늘의 예수쟁이들과 대화할 때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와 완전히 일치한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으로는 예수 녀석 자체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사람들의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는 자기가 진짜로 여호와의 아들이며, 세상의 빛이라는 사실을 무슨 방법으로든 사람들에게 이해되도록 썰을 펼쳐야 마땅하다.

그런데, 예수의 대답은 더욱 더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예수 왈, "나는 나의 온 곳과 갈 곳을 알지만, 너희는 나의 온 곳과 갈 곳을 모른다."라고. 세상에나!

어떤가?
예수의 썰을 듣고서 그것이 믿어지 않아서(이해되지 않아서)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서 답변이랍시고 떠들어대는 예수의 썰! 동문서답도 못됨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썰을 더 들어 보자.


[예수의 썰 제3]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예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신=여호와)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구약=여호와의 가르침)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여호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요한 8;15~18)



이것은 또 무슨 썰일까?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은 혼자서 떠들어대고 있는 예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증거를 알 수가 없다고 질문했다.
그런데, 예수의 대답은 여전히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예수의 썰에 의하면, "두 사람이 증거하면 무엇이나 참이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와 그 아비되는 여호와, 이렇게 두 녀석이 예수를 증거하기 때문에 예수의 모든 것은 참이다."라는 것이 예수의 주장이다. 헐!


** 철수와 철수의 생모, 이렇게 두 사람이 철수를 보증(증거)하면, 철수를 믿을 수(보증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경우를 가리켜 "두 사람이 증거(보증)하면, 참이 된다."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예수의 썰이다.


예수의 썰을 직접 더 들어 보자.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만, 나(예수)는 판단하지 않는다."
"내(예수) 판단은 옳다. 왜냐면, 나와 내 아버지(여호와)가 함께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예수의 썰들은 무엇에 대한 답변(대화)일까?
불교에 선문답(禪問答)이란 것이 있다더니, 예수는 지금 그 선문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단히 중요한 말 같아서 다시 한 번 더 음미해 보기로 한다.
 
"너희 율법(구약=여호와의 가르침)에 두 사람의 증거가 있으면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예수)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여호와)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두 사람 아니라 70억 명이 증거(보증)해도 신(神)에 관한 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무엇이 어떻다고?
"예수가 예수 자신을 증거하고, 예수의 아비 여호와도 예수를 증거하기 때문에 예수가 참이다."라고? 대박!

"예수하고 여호와하고 이렇게 두 녀석이 예수를 증거하기 때문에 예수가 참이 된다." 멋져 부렀다!
어쨌든, "두 사람의 증거가 있으면 참되다."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기록되어 있는 썰이므로 정확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디에서 사용되는 논리일까?
이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요, 예수교요, 예수쟁이들이란 말이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예수는 둘러서 있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문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수의 썰 제4]

[이에 저희(사람들)가 묻되, "네(예수)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요한 8;19)



예수 앞에서 예수의 썰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도 모르고, 여호와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당연히,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에게 묻고 있다. "네 아버지가 어디에 있느냐?"고.
그러자, 예수가 대답한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라고.

사람들은 질문했다. "네 아버지가 누구냐? 그리고, 어디 있느냐?"고. 
이 쯤되면, 예수는 자기 아비가 무엇을 하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다는 것을 밝혀야 옳다.
그러나, 예수의 답변은 역시 삼천포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모른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사람들은 A와 B가 참인지 거짓인지 그것을 모른다.
그런데, "A와 B가 함께 서로를 증거하면, A도 참이 되고 B도 참이 된다."는 것이 예수의 썰이다.
이것이 예수가 한참 동안 빙빙 돌아서 떠들어 놓은 진리(?)의 말씀이다.
 
결국, 예수의 썰들은 서 푼어치 아니, 단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것을 감지할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예수쟁이로 편입되는 것이리라. 그래 안 그래?
이런 것을 가지고 수 천 년 동안 수 백 억의 사람들이 서로 죽이면서까지 신의 섭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지지고 볶았다 이거지? 대박이로다!






[화폐(貨幣) 위조범 예수 일당]


* 위조 화페란--화폐 발행 권한이 없는 자(우리 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유일한 화폐 발행 권한 보유)가  복사기 등을 사용하여 만든 진정한 화폐와 비슷한 외양을 가지는 모조품을 말한다.
복사기 같은 기계가 나오기 전에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손으로 그린 모조품 화폐도 등장했었다.

기적질이란 것이 정말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호와의 아들 녀석 예수와 그 제자 베드로가 기적질이란 것으로 위조 화폐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기적질이 아니면 할 일이 없던 예수! 화폐를 발행할 권한이 없던 그 예수가 제도권 밖에서 기적질로 만든 돈(즉, 위조 하폐)으로 세금을 낸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모든 것)을 보기로 하자.

[...반(半=1/2)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예수)이 반 세겔(종교 세)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베드로)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丁稅)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면 아들들은 세(稅)를 면(免)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태 17 ; 24~27)


세겔--화폐 단위
        예수 당시 장정 1인당 반(1/2) 세겔의 종교 세를 받았다. 
반 세겔은 과자 값이 아니다. 힘 벅찬 세금이다.
        세겔 단위(화폐 단위)는 조금 복잡한데, 대개 1세겔은 장정의 4일 품삯에 해당한다고 한다. (적게 잡아서 200,000원) 

종교 세(반 세겔) 받는 사람들이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 물었던 모양이다. 
"너의 선생 예수는 종교 세(반 세겔)를 내지 않는냐?"고. 
그러자,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대답을 한다. "물론, 우리 선생님도 종교 세를 내신다."고. 

그런데, 세금 납부 건에 대해서 예수의 사설이 조금 길다. (특히, 종교 세에 대해서)
위의 바이블 내용은 예수가 세금에 관해서 제자 베드로에게 일장 연설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1) 예수; "베드로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세금을 받는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 베드로; "그거야 물론, 세금 징수는 아들이 아닌 타인에게서 받지요."

(3) 예수; "그렇다. 임금의 아들은 세금을 면제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아들인 나도 종교 세를 면제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저(종교 세 받는 자)들로부터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그 종교 세를 내기로 하자.
              너(베드로)는 지금 즉시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지거라. 그러면, 물고기 1마리가 걸려 올라 올 것이다.
              그 물고기 입을 열면 그 속에 1세겔의 돈이 있을 것이다. 그 돈으로 너와 나의 종교세 반 세겔 씩을 내도록 하거라.


(1) 납세 의무는 상하귀천을 구별하지 않고 평등해야 제대로 다스려지는 나라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예수는 그것을 차별화하고 있다. 탈법 행위를 가르치고 있다.
"국왕의 아들은 납세 의무가 없는 것이다."라며 역시, 여호와의 아들인 예수도 종교 세를 바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떠들고 있다.

(2) 세금은 누구를 막론하고 수입 중에서 부과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조 화폐로 그 세금을 대신하면경제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기적질로 물고기 입에서 나온 화폐는 정당한 경제 질서 속에서 창출된 가치가 아니다. 사회 구조(질서) 밖에서 만들어진 불법이다. 위조 화폐를 만들어 사용한 것과 똑 같은 결과이다.

(3) 예수가 기적질로 만든 돈은 화폐 발행 권한이 없는 손으로 만든 위조 화폐이다. 
따라서, 물고기 입에서 나온 돈으로 세금을 낸 예수의 행적은 모두 불법이다. 인류를 가르치겠다고 나선 신(神)의 자격을 가진 자의 언행으로는 문제점이 많고 크다.

(4) 물론, 전근대 사회에서는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왕과 그 아들의 경우 세금이란 것을 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지(人智)와 국가 제도가 아직 미비(未備)했을 때의 일이다. 오늘날의 경우, 납세 의무는 최고 통치자는 물론 그 가족들도 모두 평등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람의 경우는 무능하여 변화와 발전을 해야만 오늘 날의 정비된 경제 질로 정립이 되겠지만, 신(예수)의 경우는 달라야 할 것이다.
옛날부터 오늘 날의 정비된 경제 질서를 가르치고 시범을 보였어야 그래야 그게 신(神)의 할 일일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나 예수는 신의 아들이지만, 인간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하여 당당한 노동의 대가로서 세금(종교세)을 내고 있다(내겠다)." 
이렇게 말을 했어야 하고, 정당하게 스스로 돈도 벌어서 세금도 납부를 했어야 옳다.

다시 말해서, 
2,000년 전의 예수는 오늘 날의 발전된 국가의 세금 제도에 준하는 행위를 하여 인간 사회의 모범을 보여 주기도 하고 가르쳤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멋진 신(神)의 정당한 도리이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여호와) 일당은 소위 기적질로 인류 사회 또는 자연 질서를 파괴하는 짓을 자랑이라고 하고 있었다. 

아니, 아예 그 기적질을 쏟아내는 짓이 마치 신으로서의 자격처럼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인지가 미개했던 시대의 어리석은 인간이 만들어 낸 신관(神觀)이다. 
이런 짓들이 바로, 예수교(예수=여호와)는 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허구(거짓=가짜)로 판명되는 것이다.

예수는 화폐 위조범이요 경제 질서를 위협하는 악마였으며, 예수교는 그 악마 이름으로 세워진 복마전(호시탐탐 못된 짓을 하기 위하여 마귀들이 숨어 있는 곳)일 뿐이다.


* 호시탐탐--범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고 형세를 살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확하게 예수교를 두고서 생겨난 낱말이 아니겠는가? 그래 안 그래?
제삼자 2020-02-06 (목) 09:19
[예수의 본심은 심술이었다.]


** 본심--1. 본래 가지고 있는 마음.
          2.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참마음.

   심술--1. 짓궂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
           2. 온당하지 않게 고집을 부리는 비뚤어진 마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譬喩)들을 묻자오니, 

이르시되, "여호와(천당) 나라의 비밀을 너희(제자와 측근)에게는 주었으나, 외인(外人)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赦)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

(마가 4;10~12)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의 아드님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12제자와 함께 찾아가서 "왜 비유(譬喩)로 설교를 하십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제자 및 측근자들)에게는 하늘(천당) 나라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되었으나, 다른 외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말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돌이켜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차피, 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하게 할 것이라면서, 비유는 무엇에 필요해서 사용하고 있을까?
자기네들 끼리끼리는 여호와의 감동으로 말 없이도 다 알고 있을 텐데 무엇을 위해서 더 가르치려고 시도할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게 할 그 비유를 무엇 때문에 떠들고 있을까?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赦)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면서 무엇을 위하여 예수는 계속해서 떠들고 있을까? 
버린 자식들에게 약이나 좀 올려 주자는 속셈이었나? 이렇게 못돼 쳐 먹은 심술을 보았나?

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은 그것을 읽는 사람마다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하기 때문에 어차피 예수교 속에 일률적인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예수쟁이들의 주장 또한 통일되어 있는 것 없이 구구 각색이다. 이를 미루어 생각할 때, 바이블 내용은 어느 한 가지도 빼 놓지 않고 모두가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교의 모든 것은 비유로 가르쳐지고 있어서 예수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1명도 없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직행할 사람들은 바로 예수쟁이들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바이블(예수교의 교리)을 읽고서 그것을 한 가지로 통일된 배움을 말하는 예수쟁이는 없다.
오죽하면, 예수교의 종파가 자그마치 35,000가지가  넘는다고 할까!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용서받지 못할 자격 미달자들이란 바로 예수쟁이들임을 알 수 있다."
우리 한국에 1,000만이나 있고, 전 세계에 22억이나 있다는 예수쟁이들, 그들 모두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결정된 자들이 자신의 위치도 모르고서 헛물켜는 어리석은 자들이 분명하다.
 

예수쟁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악을 쓰며 주장할 것이다. 
"자기네들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해석이 맞다."고.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예수교(쟁이)를 하나로 통일시켜 놓은 다음에 떠들어 보던가.


예수의 가르침을 한 가지만 더 들어보자.


[예수께서....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예수)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상대는 예수를 몰라보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審判)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요한 9;35~39)

예수와 사람의 대화를 자세히 음미해 보자.

"너는 나(예수)를 믿느냐?" "누구신지요? 내가 믿고 싶습니다."
예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예수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도 믿음인가?"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믿는 짓에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赦)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의 이 말은 바로 예수쟁이들을 두고서 한 말이 분명하다. 예수쟁이 자격이 없는 자들이 예수쟁이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계속해서 떠들고 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겠다."고. 도대체, 예수의 심보는 무엇일까?
앞에서는 "보아도 보지 못하게 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용서받지 못하게 하겠다."고 악담을 쏟아냈다.
그러더니, 이제는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겠다."고 악을 쓴다.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이 되어 가지고, 무능하고 불쌍한 인간을 상대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 아무리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향하여 신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다.
더구나, 깊은 뜻은 고사하고, 개똥 철학도 들어 있지 않은 헛소리임에랴! (이상, 예수의 본심은 심술이었다.) 






[적반하장(賊反荷杖)]


** 적반하장(賊反荷杖)--"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을 도리어 남무람을 이르는 말.


사리(事理=사물의 이치나 일의 도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 행하는 언행(言行)에는 무슨 의미(가치)가 있을까?
다시 말해서,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린 아이, 반편(지진아) 또는 어떤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의 하는 말과 행동이 조금 쯤 잘못됐다 하여 이를 탓할 수가 있을까?
더 나아가서, 신(神)의 안목으로 볼 때, 인간의 수준은 그 크기가 어느만 한 것일까? 
신(神)의 안목으로 계산할 때, 인간을 향해서 시시비비를 따져볼만한 가치(또는 크기)가 있을까?

인간은 신(神)에 관한 한 아는 것이 전무(全無=전혀 없음)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인간이 신(神)에 대하여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현상을 정죄(죄가 있다고 판단하여 결정을 내림)할 수 있는 것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호와)여, 저희를 사(赦=벌하지 않고 용서해 줌)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 23;34)

 
위의 바이블 내용은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될 때,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자기 아비 여호와에게 그들의 죄를 용서하라고 빌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여호와 쪽에서도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사(赦)하라 말라 하고 있을까?
또,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성립되기에 무엇을 용서하라는 것일까?

 
옳든 그르든 간에,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사람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종교가 가르쳐 놓은 전통에 따라 이단(異端=정통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의나 교파를 적대하여 이르는 말)을 처단해 왔다.
이에 준하여, 히브리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당시에 예수와 히브리 사람들 중, 어느 쪽이 정통이고 어느 쪽이 이단이었을까?

솔직하게 말해서, 예수는 여호와의 이름을 참칭(僭稱=분수에 맞지 않게 스스로 신이라고 일컬음)한 죄인이다.
따라서, 예수를 처단하고 있는 히브리 사람들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럴 경우, 여호와에게 누가 누구의 죄를 사(赦=용서)해 주라고 탄원을 해야 되는 것일까?

 
"여호와시여, 젊은 혈기에 예수 저 녀석이 크게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죄값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를 용해 주옵소서."
 
오히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야 제대로 되는 상황이 아닐까?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십시오. 저들은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 말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적반하장(賊反荷杖)에 해당하는 난센스(nonsense)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신(神)에 관한 한 인간의 어떤 언행(言行)에도 죄가 성립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신(神)은 인간이 감지할 수도, 알아 낼 수도, 믿을 수도, 받들 수도 또는 위해를 가할 수도 없는 괸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神)에 관한 한 어떤 것을 말하는 자도 사기꾼 대열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사기꾼 덩어리로 뭉쳐 놓은 덩어리이다. 예수교의 어떤 것도 사기꾼 행각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은 없다.
신(여호와 및 예수 등등)에 대해서 입을 버끗하는 자(입을 조금이라는 벌리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무조건 사기꾼일 수 밖에 없다.





[암, 재미있는 세상이구 말구!]


예수교에서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경우가 많다.
제삼자(필자)는 수 십 년 전, 죽은 사람을 살려 본 적이 있다고 우렁차게 떠들어대는 부흥사(목사)도 봤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호와의 아들을 자처하는 예수는 물론, 여호와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엘리야 및 엘리사 등도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엘리사>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장면을 잠시 구경해 보려고 한다.


여호와의 유명한 앞잡이였던 <엘리사>는 한 때, 어느 가정 집에 들어 앉아서 그 집 안주인의 서비스를 받으며 여호와의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고 한다.
남편은 늙은이였고, 아내는 꽤나 예쁘고 젊은 여자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가정 집이었다. 자연히, 그 가정 집에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어린 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왜, 아이가 갑자기 죽었을까? 사람들에게 여호와에 의한 기적질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헐!

옛날이나 지금이나, 예수를 비롯해서 엘리야, 엘리사, 목사, 신부 등등, 여호와의 앞잡이들은 왜 남의 집 예펜네(여편네)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활동을 해야만 했을까?  (요상하네!)

(각설하고)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엘리사가 집(엘리사가 묵고 있던 가정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혀 있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안에서 한번 이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7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는지라.]

(열왕기하 4;32~35)


1) 죽은 아이의 시체가 자기 방의 침상에 눕혀 있었다고 한다.
2) 방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볼 수 없게 방문을 닫는다.
3) 방안에는 엘리사와 죽은 아이의 시체, 이렇게 둘 뿐이었다.

4)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를 한다.
5) 엘리사가 아이의 위에 올라가서 엎드린다.
6) 엘리사가 자기 입을 아이의 시체 입에 댄다.

7) 엘리사가 자기 눈을 아이의 시체 눈에다 댄다.
8) 엘리사가 자기 손을 아이의 시체 손에다 댄다.

9) 엘리사가 자기 몸을 아이의 시체 위에 엎드린다.
10) 그러자, 아이의 시체가 차차 따뜻해진다.
11) 엘리사가 아이의 시체에서 내려와 집안에서 한번 이리저리 다닌다.

12) 엘리사가 다시 아이의 시체 위에 올라 엎드린다.
13) 아이의 시체가 차츰 따뜻해진다.
14) 아이의 시체가  7번 재채기를 한다.

15) 마침내, 아이의 시체가 눈을 뜬다. 주인집의 어린 아들이 살아난 것이다! 할렐루야! 아맹!

죽은 시체를 살려내려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밟아야 되는 모양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합세를 하더라도 이렇게 어려운 게 죽은 시체를 살려내는 것이로구나!


죽은 시체는 엘리사의 기도로 살아난 것인가?
아니면, 엘리사의 이상한 행동의 힘으로 살아난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여호와의 순수한 능력만으로 죽었던 아이가 살아난 것인가?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려면, 7번의 재채기를 하게 되어 있는가?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이런 장난질만 계속할 셈인가?
여호와는 무슨 목적으로 왜 이렇게 이상한 짓만 골라서 할까?

이런 괴상한 신에게 매달려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쨌든, 재미있다. 여호와라는 괴물이 있다는 것은.
이런 괴물을 따라다니는 괴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더욱 재미있는 현상이야. 암, 재미있는 세상이구 말구!
제삼자 2020-02-20 (목) 10:49
[옛날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꽃뱀]


오늘 날의 직업 중에는 <꽃뱀>이란 것도 있고, <제비족>이란 것도 있다고 한다.
1, 꽃뱀--남자에게 속셈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 사귀고, 금품을 우려내는 여자.
2. 제비족--특별한 직업 없이 유흥가를 전전하며 돈 많은 여성에게 접근하여 성적 유혹을 하고 돈을 갈취하는 젊은 남자 부류.
그런데, 옛날에, 중동 지방과 북 아프리카 지방에는 꽃뱀과 제비족과는 조금 색다른 직업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것을 잠시 소개하려고 한다.


(1)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의 제1대 조상이요, 예수교에서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부름을 받고, 장장 1,600km(4,000리)가 넘는 여행 끝에 가나안(팔레스틴) 지방으로 이주한다.
B.C.1500년 즉,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사막 벌판의 여행이고 보면 대단히 먼 여정이다.

(2) 고향 우르 지방(이라크의 메소포타미아 평야 남단)에는 10명의 아브라함의 직계 조상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이주할 때에 그 아비 <데라>만을 데리고 떠났으므로, 할아버지 위로 9명의 조상들은 버려 둔 채로 야반 도주를 한 셈이다.

(3) 아브라함의 9대조 할아버지인 <셈>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33년을 더 살았으며, 다른 할아버지들도 모두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 생존하고 있었다.
아브라함의 나이 139세 때 죽은 조상도 있고, 135세 때 죽은 조상도 있으며... 어쨌든 아브라함의 나이 48세 때 죽은 조상이 가장 일찍 죽은 할아버지이다.
아브라함의 윗대 조상들은 이렇게 수 백 살 씩 오래도록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을 직계 조상을 유기(遺棄=내다 버림)한 패륜아라고 해도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두뇌 조직이 꽤나 엉성했던 종교 사기꾼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조작해 낼 때, 아브라함보다 윗대의 조상들의 나이를 수 백 살 씩 크게 늘여 놓고는 그 사실을 까먹었거나 또는 바이블 내용을 조작하는 과정 중에 그 나이들을 적당히 배치하고 수습할 능력이 없어서 그대로 방치해 놓았을 게다.
그래서, 바이블 속의 모든 숫자들은 앞뒤 문맥이 맞지 않고 뒤죽박죽이다.

결국, 그 이유는 바이블 내용이 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허구(거짓=가짜)임을 증명하는 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4) 아브라함이 직계 조상들을 모조리 고향 땅에다 내버려 두고 가나안 지방으로 이주했을 때. 그의 나이가 75세라고 한다.
그러나, 제삼자(필자)의 계산으로는 적어도 165세 이상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어야 맞는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숫자 계산은 귀찮고 손대기 싫은 분야인가 보다. 따라서, 두뇌 조직이 엉성했던 어설픈 종교 사기꾼이 조작해 놓은 바이블 속의 숫자 계산이 제대로 되어 있을 턱이 있겠는가? 헐!

두뇌 조직이 엉성했던 종교 사기꾼은 아브라함 시대 사람들의 나이를 수 백 살대로 늘여 놓고는 그 상황을 수습할 능력이 없었을 테니까 결국은 횡설수설 뒤죽박죽을 만들게 된다.
바이블 내용은 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허구(거짓=가짜)임을 증명하 해 주는 한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 여호와가 지정해준 땅, 가나안 지방에 아브라함이 자리를 잡았지만 그 지방에 기근(흉년)이 든다. 또 다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명에 따라 애굽(이집트)으로 이주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가족이 여호와의 명을 따라 애굽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보기로 하자.


[...그(아브라함)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사라)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 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전하겠노라" 하니라.]

(창세기 12;10~13)


(6) 전지전능한 신이신 여호와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아브라함의 가족이다. 그런데도, 안전이 걱정되어 속임수를 쓰고 있다. 대박!
이렇게 나약한 믿음을 가진 자가  무엇을 믿고서 직계 조상을 내팽개치고 그 옛날에 4,000리나 되는 먼 여행을 했을까?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

이 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나이는 적어도 65세보다는 몇 살을 더 먹었을 때의 일이다.(바이블의 기록대로라면).
그런데, 제삼자 (필자)의 계산으로는 65세가 아니라 155세 이후의 일이 맞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가 심히 아리따워서 누구에게 빼앗길 것을 걱정하고 있다. 할머니를 빼앗아다가 무엇을 어쩌겠는가?

아브라함 시대는 사람들이 200세 가까이 살던 시대이므로 여자 나이 70세 때에도 아리따운 아가씨 같을 수도 있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89세 때에 사라가 자기의 늙었음을 한탄하는 장면이 바이블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70세의 때의 사라는 역시 아리땁기는커녕 사막 기후에 찌들은 할망구였을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그 때, 사라의 나이는 155세도 넘었었다. 이런 할망구를 빼앗아다가 무엇에다 써 먹을까?

(여기도, 두뇌 조직이 엉성했던 어떤 종교 사기꾼이 바이블 내용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남발하는 과정이다.) 

어쨌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애굽(이집트)에 들어서면서 아브라함의 누이 행세를 했다고 한다.



(7) [아브라합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사라)의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애굽 왕)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왕)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宮)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창세기 12;14~16)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기는 대가(실제로는 대여해주는 대가)로 많은 재산을 획득하게 됐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계집 장사는 이번 뿐 만이 아니다. 또, 그 아비에 그 아들 답게 <이삭>도 아비처럼 계집 장사로 큰 재산을 모은다. 고대 중동 지방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힘이 어느 정도 강한 자는 자기 계집을 빌려주고 재산을 모을 수도 있지만, 힘이 없으면 재산을 모으기는커녕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은 전지전능하신 신 여호와께서 돌봐주시는 덕택에 자기 계집으로 대여 사업을 할 때 목숨을 잃지 않고 오히려 큰 재산을 모아 거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박!



(8)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사라)의 연고로, 바로(왕)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아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누이라고 속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왕)가 그의 사람(신하)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세기 12;17~20)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임수를 쓴 자는 아브라함이었다. 그런데, 여호와가 내리는 벌(재앙)은 바로왕과 그 왕실이 받았다고 한다.
늙은 계집을 젊고 아리따운 여인으로 보이게 하여 왕에게 빌려주고서도 많은 재산을 벌게 된 것은 여호와의 재주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아브라함 일가가 애굽에서 나올 때는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란다. (창 13;1). 대박!


(9) 또, 아브라함의 계집 사라의 나이 거의 90살이 다 되었을 때에도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누이라고 속여 대여하고서 양과 소와 노비와 은 1,000개와 살아갈 땅까지 얻어 냈다고 한다.
이 때도 속임수를 쓴 자는 아브라함인데, 여호와는 아비멜렉왕가의 모든 태(胎)를 닫아버려 후손을 끊어 놓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기도를 해서 그 닫아 놓았던 태를 다시 열어주었다고 한다. (창 20;1~18)

그러니까, 남의 태를 막아서 대를 끊어 놓았다가 다시 열어준 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마음이 넓고 큼직하다는 것을 나타내겠다는 게야 뭐야?
어쨌든, 세상에는 별 것들 다 있어!

요즈음의 <꽃뱀>과 <제비족>과는 조금 쯤 색다른 직업이 옛날의 중동지방에 있었다고 하기에 잠시 훑어 보았다.
강(强) 대 강(强) 즉, <애굽 왕>과 <여호와 신> 사이에서 벌어지던 계집 대여 사업이었다고나 할까? 멋져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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