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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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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473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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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3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짓]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3-03-25 (월) 08:39 조회 : 7662
*3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짓]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과 견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무슨 일을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한 실력과 견식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일 수록 더욱 신바람이 나서 펄펄 뛰다시피 활동이 활발해지는 분야가 있다.

"어디에 그런 곳이 있느냐?"고?

예수쟁이들이 흔히 나타내는 겸손 중에 무서운 현상이 한 가지 있다. 겸손이 아니라 겸손한 척하는 짓이지만...
종교인 중에 착한 척, 너그러운 척, 정직한 척, 양보하는 척, 그리고 겸손한 척...이런 짓을 하지 않는 자가 있을까?
그러나, 일단 어떤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삽시간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안면을 싹 바꾸어 악마로 돌변하지 않는 예수쟁이가 없다는 사실을 체험해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나도 아직 바이블 내용을 자세히는 모릅니다."-겸손한 척 떠들어 보는 예수쟁이들의 표현이다.

목사와 신부는 물론 소위 신학자라는 사람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예수쟁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지금까지 필자와 면담(종교 논쟁?)을 했던 예수쟁이 중에 저런 말을 하지 않은 예수쟁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바이블 내용을 자세히 모른다."는 말은 예수(여호와), 예수교, 예수교 역사, 예수쟁이 등등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말이 분명하다.
짧게 말해서, 예수교의 모든 것에 대해서 모른다는 뜻이다. 겸손을 나타내느라 "모른다."고 한 것이 아니라, 바이블 및 예수교를 아는 예수쟁이는 사실상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모르는 자들이 예수교(여호와=예수)에 대해서 전도를 합네, 설명을 합네 하고 덤빈다. 이런 현상보다 무서운 짓이 있을까?
바이블에도 있는 말이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한다."고. 모르는 사람(장님)이 누구를 인도하겠다고 설명을 하고, 가르치고, 전도하고...
다시 말한다. 이런 짓보다 더 무서운 현상은 없을 것이다.

면장도 어느 정도의 실력과 견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했다.
하물며, 사람의 정신 세계를 송두리 째 좌지우지하고, 천국과 지옥을 들먹이며 재물을 갈취하기 위해서 <모르는 것>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종교의 짓보다 더 무서운 짓이 있을까?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3-03-27 (수) 08:47

[선(善)한 목자(牧者)이신(?) 예수님]



목자(牧者)란 양(羊)을 치는 사람 즉, 양을 쳐서 먹고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양은 목자의 밥이다.
양은 반드시 갖가지로 착취를 당하다가 마침내 제 목숨을 다 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 목자의 먹이가 되게 마련이다.

심지어 가장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을 <희생양(犧牲羊)>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면, <선(善)한 목자>란 무엇일까?
양을 착취하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는 목자인가?
양들을 맹수로부터 보호해 주고 먹을 것을 주어 제 수명을 다 하도록 도와주기만 하는 사람인가?

<선(善)한 목자>가 있으면 <악(惡)한 목자>라는 것도 있는가?
그 <악한 목자>는 양에게 풀도 뜯기지 않고, 맹수들에게 노출시켜 해침을 받도록 유도하는가?

결론을 말하면, 부지런한 목자, 게으른 목자는 있어도 선한 목자, 악한 목자는 없는 것이다.
양은 목자의 재산(돈)이다.
따라서 자기 재산을 고의로 학대하고 파괴할 바보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게으른 목자보다 부지런한 목자에게 속한 양들이 훨씬 많은 것을 착취당할 것이다.
양들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번식(繁殖)을 해야 되고, 젖과 털을 생산하다가 결국 자신도 잡혀 먹히는 것이 양들의 일생이다.

야생(野生)으로 살아도 천적과 여러 가지 위험이 있지만, 야생 동물들은 제 수명을 다하며 착취당함 없이 자유롭게 생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없지도 않은 것이다.

양(동물)은 선한 목자건 악한 목자건, 그 목자라는 것 없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다.
양(동물)에게 있어서 최악의 적은 목자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아들 예수를 가리켜 <선(善)한 목자>라 한단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는 양 대신 사람을 치는 선한 목자란다. 무엇을 의미할까?

목자의 직분은 무조건 양들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착취하는 데에 그 목적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착취할 것이 적어진 양은 시간을 다투어 죽여 버리게 되어 있다.
그것이 부지런한 목자(선한 목자?)일 경우, 더욱 철저하게 단행될 것은 자명하다.

이제 바이블을 보자.

1) ["내(예수)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요 강도며,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직이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요한 10;1~6)

선(善)한 목자인 예수가 자신의 역할을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比喩)의 말을 사람들이 알아 듣지를 못하더라는 것이다.
알아 듣지 못하는 게 아니라, 거부 반응을 일으켰을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말)은 100 % 찬성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神)의 것이라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는 신(神)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유(比喩)로 말함은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예수는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의 비유도 그런 차원이었을까?

목자는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드나들고, 절도와 강도는 울타리로 넘나든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예수교(히브리 포함)는 지금까지 남의 나라에 들어갈 때, 총칼을 앞세우고 절도, 강도 모습으로 들어갔다.
그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므로 변명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예수교는 주인이나 상대의 허락도 없이, 지하철, 유원지, 공공 장소, 주택가 심지어 타종교의 안마당에까지 들어가서 소위 `전도`랍시고 자기 주장을 떠들어댄다.
역시 목자 아닌 절도와 강도의 행패이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고 따른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교는 양(羊=사람)들이 "모르겠다" "싫다" "다시는 내 집에 오지 말라" 등등으로 거절을 해도 막무가내로 쑤시고 들어와 "여호와(예수)는 너를 사랑한다" "믿고 천당가라"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 "덮어 놓고 믿어라" 등등으로 억지를 부린다.

양들은 타인(절도, 강도)의 음성을 들으면, 오히려 도망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역시 예수교는 목자가 아닌 절도, 강도들이다.

예수의 말대로라면, 양(사람)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서 따라갈 텐데, 왜 억지로 `전도`라는 짓을 하고 있을까?


2)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善)한 목자(牧者)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勒奪)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요한 10;7~13)

사람들이 비유(比喩)를 알아 듣지 못하자 다시 풀어서 한다는 말이 또 비유 뿐이다.
예수는 역시 사람들을 구원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까?
믿도 끝도 없이 예수교에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예수는 "자기보다 먼저 온 자는 모두 절도요 강도"란다.
이 말 하나만 가져도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될 소지(素地)는 충분했을 터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팔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 때였으니 말이다.

자기(예수)만이 <양의 문>이란다.
예수는 <선한 목자>도 되고, <양의 문>도 되는 셈이다.
그럴싸한 것은 모두 자기 꺼군?

예수보다 먼저 온 자들은 절도요 강도이기 때문에 양(사람)들이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가 태어난 땅에서는 예수보다 먼저 온 선지자(모세, 엘리야 등)를 따라 여호와만 받들 뿐, 예수를 따르기는커녕 아예 죽여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예수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떤다.
예수의 말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에 가 본 사람보다 서울에 가 보지 못한 놈이 서울 풍물을 더 잘 안다."는 식으로, 예수를 잘 아는(?) 것은 본국 아닌 타국 사람들이다.
예수가 태어난 이스라엘에는 아예 예수가 없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려는 것이란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가 온 것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하려는 것이란다.

그러나 예수가 오던 날, 수 많은 아기들이 죽여져서 그 가족들의 슬피 우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으며, 예수교가 들어간 땅에서는 도륙을 당하고, 모든 전통과 문화 유산들이 파괴되고, 정신 세계는 마비되어 매혼노(埋魂奴)들의 세상이 되어 있다.

예수는 <선한 목자>라더니, 진정한 의미로서의 구실을 다 한 셈이다.
양들로부터 최대의 착취와 최대의 살생(살인)을 자행해 냈으니 말이다.

원문에 "삯군" 얘기도 나오지만, 선한 목자인 예수의 만행질에 비할 바가 못되므로 여기에서 논할 가치가 없을 것 같다.


3) ["나(예수)는 선(善)한 목자(牧者)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여호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 10;14~15)


예수쟁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내용 중 하나이다.
얼른 듣기에 멋스럽고 포근한 위안의 말로 들린다. 그래서 예수쟁이들이 홀딱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선한 목자 또는 악한 목자란 따로 없는 것이다.
자기 재산인 양들을 아끼지 않는 목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신(神)의 가르침은 이렇게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전지 전능이라 하지 않던가?

양을 위하여 목자 즉, 인간을 위하여 신(神)이 목숨을 버린다는 것도 어불 성설(語不成說)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예수교의 신학적 해석을 필자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모두 헛소리이다.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가 나를 알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다."에 이어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이게 무슨 논법이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또, 정말 양(사람)이 예수를 안다는 말인가? 누가 그러던가?

제삼자 2013-03-28 (목) 15:15
[어느 쪽이 참이고 어느 쪽이 거짓일까]


@@@ 모슬렘(마호메트교도)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1) [참다운 기도란 알라(신)에게 드리는 기도이다.
알라(신)를 제쳐 두고, 그들(예수쟁이들)이 기도 드리고 있는 것(예수)이 그들에게 응답하는 일은 없다.

그것(예수쟁이들이 기도하는 짓)은 물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입까지 와 달라고 해도 물이 와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슬렘) 신앙이 없는 무리들의 기도는 다만 미혹 속에 머무는 것에 불과하다.]

(코오란 13; 14)

코오란(모슬렘)에 의하면, 예수는 우상이라 한다.
따라서, 예수쟁이(유대교인 포함)들이 아무리 기도를 하더라도 응답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한다.
오로지, 모슬렘들이 알라에게 기도할 때에만 응답이 있을 것이라 한다.

예수교 쪽 주장은 참일까? 거짓일까?
모슬렘 쪽 주장은 참일까? 거짓일까?



@@@ 예수쟁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2) [(예수 가라사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호와)여...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아멘"]

(마태 6; 9~13)

이상은 예수가 그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기도문이다. 그러나, 이를 어쩐다?
코오란에서 지적하였듯, 우상(예수)에게 아무리 기도라는 것을 해 봐야 나올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알라야 말로 전지전능한 신(神)이기 때문에 알라의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모슬렘과 예수교는 한 발짝도 양보함 없이 자기네 신만이 진짜 신이고, 상대는 무조건 우상(또는 마귀)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경우, 우리 인간들은 어느 편을 들어야 할까?


참고; 바이블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이상의 기도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예수쟁이 중에 죄를 용서 받고 천당에 갈 수 있는 자가 있을 수 있을까?
왜냐 하면, 예수쟁이 중에 자기 둘레를 용서해 본 적이 있는 자가 있는지 알아 보면 알 것 아닌가?

용서는 고사하고 남의 피를 빨아 먹지는 않았는지? 이웃을 핍박하지는 않았는지? 이웃을 죽음으로 몰아 넣지는 않았는지? 이웃에게 악담과 저주를 퍼붓지는 않았는지?
상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하여 속임수와 이죽거리는 짓을 쏟아 내지는 않았는지, 등등?

이러고도, 용서받고 구원되어 천당에 갈 수가 있겠는가? 꿈도 야무져, 예수쟁이 멀대들은!
제삼자 2013-03-30 (토) 09:13

[동물이 교미할 때]

예수쟁이들의 먼 조상 중에는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들 <이삭> 그리고 손자 <야곱>, 이렇게 3 대(三代)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3 번 째 조상인 <야곱>에 대해서 잠간 보려고 한다.
<야곱>에게는 여호와가 내려 준 이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히브리 족속의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이 됐다고도 한단다.

야곱은 우여곡절 끝에 멀리 도망쳐서 외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는데, 이 때 외삼촌(라반)의 두 딸을 차지하는 대가로 그 집에서 14 년 동안 머슴살이를 해야 했다고 한다
.
그리고, 자기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또 다시 머슴살이를 더 하게 된다
.
이 때, 야곱과 외삼촌(라반) 사이에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

<
계약 이후에 태어나는 (
)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얼룩진 것을 야곱의 품삯으로 한다>.

욕심 많은 외삼촌 라반은 그 날로 양떼 중에서 검은 것과 점 있는 것과 얼룩진 것을 모두 추려서 사흘길 이상의 먼 곳으로 보낸다
.
새로 태어나는 양 새끼 중에 점 있는 것과 얼룩진 것들이 태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다
.
그래야, 사위(조카) 야곱의 품삯을 줄이고, 자신(라반)의 재산은 그만큼 더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전지전능한 여호와가 야곱 편을 들었기 때문에 양떼에서는 점 있는 것과 얼룩진 새끼들이 쏟아져 태어난다
.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요걸 몰랐던 것이다. ㅎㅎ...
마침내, 야곱은 거부(
巨富)가 된다. 이와 같이 여호와(예수)가 함께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사필귀정이요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아멩!

여기에서 잠시 바이블을 보자
.

[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교미),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교미)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한 양이 새끼 밸(교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교미)게 하고,
(
)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약()한 자()는 라반(외삼촌)의 것이되고, ()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야곱)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

(
창세기
30; 37~43)


양이 교미(
交尾)할 때, 나무 가지를 보여 주면 얼룩진 것과 점 있는 새끼를 배고, 그 나무 가지를 보이지 않게 하면 흰 새끼를 배더란다. 전지전능한 여호와(예수)의 재주는 이런 것이다. 아멩!
그래서, 야곱은 건강한 양이 교미할 때는 나무 가지를 보여 주고, 약한(병든) 양이 교미할 때는 나무 가지를 보이지 않도록 치워 버려, 건실한 양들은 모두 야곱의 것이 되고, 병들고 약한 양들은 라반(외삼촌)의 것이 되었더란다
.

이유야 어떠하던,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자가 자신의 것은 충실하게 하고, 주인의 것은 망쳐 놓는 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
더구나, 나무 가지 하나로 부(
)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로서 그것이 할 짓일까?

어쨌든, 여호와의 전지전능한 재주는 이유 불문 야곱(예수쟁이 조상 그리고 마침내 예수쟁이)의 편이 되어 주는 일에만 써 먹어진다
.
예수교의 신(
) 예수와 여호와의 활동 중에서 기적질을 빼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여호와는 여기에서도 멋진(?) 기적질 한 가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가축()이 교미를 할 때, 나무 가지를 보여 주면 얼룩얼룩한 새끼를 낳게 하고, 반대로 나무 가지를 보여 주지 않으면 흰 새끼를 낳게 할 수 있었다."는 기적질!

이것이 여호와의 기적질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 재주 한 번 좋다
! 아멩!

예수교 속에는 학박사를 비롯하여 박학 다식한 사람도 많다
.
그런데, 위와 같은 여호와의 기적질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여전히 뭔가를 변명하면서 그 소굴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하겠지? 밝은 대명 천지에 사람 껍데기를 쓰고서 말야.....

 
제삼자 2013-04-02 (화) 12:32
[아름답고 위대한 우리 대한민국]


(1) 필자는 아주 어려서부터 역사와 지리 쪽의 공부를 꽤나 좋아했다.
    그래서 그랬던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역사 공부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국사책(사실은 사회) 첫 부분 즉, 원시 사회를 설명하는 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가무(歌舞)를 즐겼다."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데...결국은 땅 속에서 나온 유물들을 가지고 짐작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필자는 평생 동안 그 <가무(歌舞)를 즐겼다>라는 것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었다.

    특히, 필자 자신이 가무(歌舞)와는 거리가 멀고, 소질도 없고, 별로 흥미도 없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민족이 그 가무(歌舞)와 대단히 밀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잡한 다른 얘기는 다 생략하고,
    전국에 산재해 있는 <노래방>,
    수 십 년 동안 조금도 식지 않는 <전국 노래 자랑>,
    전국 곳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춤과 노래> 등등만을 봐도 짐작되고도 남는다.

    우리 민족이 천성적으로 가무(歌舞)를 얼마나 좋아하는 가를 알 수 있게 한다.


(2) 필자는 어려서부터 우리 대한민국을 가리켜 <새 나라>라고 말하는 것을 꽤나 싫어했다.
    어린이 노랫말까지도 <새 나라의 어린이>가 등장하고, <신생국>이란 용어도 등장하고....
    그러나, 대한민국이 어째서 신생국인가?

    일본 제국주의에게 <주권>을 빼앗겼던 기간은 겨우 35 년이며,
    그 기간에도 엄연히 <상해 임시정부>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어디에도 35 년 짜리 식민지는 없었으며,
    그런 상태를 자칭하여 <신생국>이라며 자신을 깎아 내리는 얼빠진 민족(국민)도 없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나라를 방(邦)이라고 하지 못하고, 격을 낮추어 국(國)이라고 명명한 것도 용남하기가 힘들다.


(3) 필자는 종종 말해 오고 있다.
    "나는 100 년도 못사는 짧은 인생을 살지만, 실제로는 수 백 만 년을 살아가고 있다." 고.

    그렇다. 필자는 100 살을 살지 못하고 또 지구 전체도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적어도 수 백 만 년 동안 수 백 억 광년의 우주를 관람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천국과 지옥도 드나들면서 즐기고 있다.

    수학, 역사학, 지리학, 물리학, 천문학, 지구과학, 자연과학, 문학, 그리고
    종교(학) 등은 필자의 생(生)을 수 백 만 년 또는 수 백 억 광년으로 시공을 확대시켜 놓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어렸을 때는 수 십 만 년 전부터 사용되던 물건과 풍습들이 많았다.

    필자는 몇 년 전, KBS 1 TV에서 일생 최대의 충격적인 사실들을 시청하게 되었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1920 연대의 우리 한국의 모습(생활상)을 보게 됐던 것이다.
    6.25 전쟁 발발 전의 모습을 잘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실제로 겪었던 사실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예술가이자 인류학자인 독일 신부 <노베르트 베버>가 기록 영화 형식으로 남긴 것이라 한다.

    긴 말은 모두 싹뚝 잘라서 생략하고,
    <베버> 신부가 전해 주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속에서 필자의 뇌리를 쾅쾅 때리고 있는 것은 다음의 말이었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 한칸 짜리 집에서 거지 발싸개 같은 누더기 옷을 입고 살아 가는 사람들이지만, 그 속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찬란한 문화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조선 말기 주한 프랑스 공사관에 파견됐던 어느 프랑스 대령(이름을 잊음)도 말했다고 한다.

    "아무리 초라한 집에를 가 봐도 그 집에는 다만 몇 권이라도 책이 꽂혀 있다. 이 현상은 우쭐대고 싶은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기가 꺽이게 한다."고. 

     최고의 선진국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대령의 눈에 거지 발 싸개 만도 못해 뵈는 조선 사람이 얼마나 깔보였을까?
     그런데, 그들 조선 사람들의 집에는 다만 몇 권이라도 책이 꽂혀 있다니...속으로는 자존심이 꺾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베버> 신부는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선교를 위해서 세계의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원주민들에게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법은 물론 사람이 해야 할 일(도덕) 등을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 모든 것이 들어 있었으며 실천하고 있었다.
    다만, 일반 백성들이 허덕이게 된 이유는 자신들이 모르거나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지배자들의 착취와 일제 침략 때문일 뿐이었다." 라고.


(4) 결론이 분명해졌다.

    흔히들 말한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해도 보리고개가 있던 나라인데, 잘 사는 나라가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조를 받던 나라인데, 원조를 할 수 있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갑자기 올림필 경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등등....
    ...............................
    .......................................................
    마치, 무식하고, 게으르고, 못난 혈통 때문에 못 살던 나라인데, 현대에 이르러 서양의 앞선 문명을 따라 잡게 되어 부흥을 하게 된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한국 민족 속에는 수 천 년 전부터 그 속에 뛰어난 능력을 함축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팔만대장경> <금속활자> <청자> <훈민정음> <측우기> <한지> 등등....
    그리고, 각종 유무형 문화재들을 죽 연결시켜 보라.
    어떤 그림이 떠 오르는가?

    그렇다. 우리 한국 민족 속에는 전 세계를 포용하고도 남을 모든 것이 이미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무식하고 가난한 가정 속에도 줄기차게 이어 내리는 예의 범절과 도덕이 있었으며, 다 쓰러져 가는 집 속에도 <책>이 있었으며, 인간이 해야 될 것과 해서는 안 될 기준이 있어 왔다.

    이것이 <아름답고 위대한 우리 대한민국>이다.
    인위적으로 급조된 엉터리 통치 기준(?)과 예수교의 사기 행각만 걷어 내면, 우리 한국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찬란한 광채는 전 세계를 휘덮고도 남을 것이다. 
제삼자 2013-04-09 (화) 12:36
[형! 그 멋진 기적질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줘요]


<다음 이야기는 조금 신경을 써야 들리는 말이다.>


(1) 예수는 잡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숨어다니면서,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그러자, 그 동생들이 권한다.

"형님, 집(또는 근처)에서만 그 멋진 기적(권능)을 보여 줄 것이 아니라,
서울(예루살렘)에 가서 여러 사람에게도 그것을 보여 주시오." 라고.

참고; 전지전능한 신이 숨어 다닌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고, 때가 되지 않으면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서 구태어 인위적으로 도망다닐 이유가 무엇일까?


바이블을 보자.

[...그(예수)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다른 사람)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요한 7;1~4)


바이블 내용으로 보아, 예수의 형제(동생)들은 자기 형 예수가 행하는 일(기적과 권능 등)을 여러 번 보아 잘 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형 예수가 그 기적과 권능을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런데 바이블은 이상한 말을 한다.

[이는 그(예수)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한 7;5)

예수에게 여러 사람 앞에서 적극적으로 기적과 권능을 보여주라고 권한 것은 분명 예수를 믿고 있기 때문에 권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가리켜, <예수의 형제들도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바로 바이블 기자의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이블은 신(神)의 말이 아니라,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이 서투르게 꾸며 낸 글이란 것을 증명한다.
바이블에는 이런 장면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필자의 글 재주가 없어 제대로 전하지를 못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장면들이 바로 바이블(예수)이 허구(虛構=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허구(거짓) 속에 등장하는 여호와도 허구요, 허구의 아들 예수도 허구요, 그리고 허구가 주관한다는 예수교도 허구임은 거론의 여지가 없다.
허구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일 뿐이다.


(3) 바이블의 엉터리 기록을 그대로 믿고서 한 마디.

한 지붕 밑에서 생활하는 부모 형제도 믿지 못하는 예수를 남에게 믿으라는 경우는 무엇이며, 또, 믿는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제삼자 2013-04-18 (목) 08:39
[전쟁(戰爭)의 이유와 목적]


1) [모압 왕 메사는 양(羊)을 치는 자라. 새끼양 10 만의 털과 수양 10 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왕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열왕기하 3;4~5)


모압의 메사왕은 그의 종주국인 이스라엘에다 매년 20 만 마리의 양털을 조공(朝貢)으로 바쳐 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죽자,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여 그 양털을 바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전쟁의 이유 한 가지가 되는 셈이다. 주로 재물을 더 가지려는 자와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 사이의 힘 겨루기가 전쟁의 이유와 목적이다.

전쟁의 또 다른 이유와 목적은 여기에서 생략하자.

이리하여, 이스라엘 왕은 유다 왕을 설득하고 또, 에돔족의 왕도 끌어들여 마침내 3국(이스리엘, 유다, 에돔) 동맹군을 결성하여, 모압 왕에게 선전 포고를 하게 된다.
3국 동맹군이 행군하는 과정에서, 선지자 엘리사(엘리야의 제자)를 통하여 벌이는 여호와의 기적질들은 볼만 하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2) [아침에 모압 사람(군인)이 일찌기 일어나서...
"모압 사람(군인)들아, 노략(虜掠)하러가자." 하고, 이스라엘 진(陳=3 국 동맹군)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군인)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1. 모압 사람을 치고,
2. 그 성읍(城邑)을 쳐서 헐고,
3.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4. 모든 샘을 메우고,
5.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열왕기하 3;22~25)


여호와가 진두 지휘하여 히브리 족속들이 벌이는 성전(聖戰)의 한 장면이다.

다시 보자.

1. 모압 사람을 쳐죽이고,
2. 성읍(城邑)을 모두 허물고,
3. 좋은 밭에 돌을 가득하게 던져 넣어 못쓰게 만들고,
4. 모든 샘물(우물)을 메워 다시는 물을 마실 수 없게 하고,
5. 모든 좋은 나무를 베어버려 황폐화시켜, 그렇잖아도 사막 벌판의 땅을 아예 철저한 불모의 지옥을 만들고 있다.

전쟁의 목적은 잃었던 것을 되찾거나, 영토와 백성을 확장하여 더 많은 권력과 명예와 부(富)를 누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을 승리로 마감하게 되면, 즉시 왕(대통령)이나 군사령관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방(榜=포고문)이 붙게 마련이다.
점령지와 백성은 나의 권력과 명예와 부이기 때문에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음(포고문)-

1. (주민의) 인명을 해친 자는 참(斬)한다.
1. (주민의) 재물을 취득한 자는 참(斬)한다.
1. (주민의) 부녀자를 희롱한 자는 참(斬)한다.
1. (주민의) 민폐를 끼친 자는 참(斬)한다.
1. (주민의) 민심을 어지럽힌 자는 참(斬)한다.

국왕(또는 군사령관) ***



그런데, 여호와의 포고문은 어떤가?

1.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칼날로 싹 쓸어 죽이라.
2. 양, 염소 등, 모든 가축을 싹 쓸어 죽이라.
3. 모든 성(城)은 돌 위에 돌 하나 없도록 싹 쓸어 파괴하라.
4. 영원히 기억에 남지 못하도록 싹 쓸어 도륙시켜라.
5. 싹 쓸어 진멸 또, 진멸시켜라.
6. 우상(문화 유산과 전통)을 싹 쓸어 파괴하라.
7. 농경지를 황폐화시키고, 우물도 메워, 싹 쓸어 폐허화하라.
8. 나무도 모조리 베어 버려 싹 쓸어 불모지화시켜라.
9. 혹시, 남은 것이 있으면 대대로 이어 철저히 원수되어 싸우라.
10. 어기는 자는 `칼날에 삼키우리라.`


여호와가 진두 지휘하는 소위 성전(聖戰)은 도무지 규칙이나 목적이 없다.
그냥 <지랄 발광>일 뿐이다. 뭐라고 설명을 할 수도 없다.
<개지랄>이라고 표현하려다가도 개 한테 미안하고...
제삼자 2013-04-22 (월) 01:03

[금송아지 받들어 모시기]


불교인이던 사람이 예수쟁이로 바뀌어 있는 경우를 발견할 때가 있다.
물론, 예수쟁이가 절에 드나드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는 경우도 많다.
개신교인이 천주교인의 탈을 쓰고 있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인(예수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등)이 자기 몸에 치장하고 다니던 금반지(또는 금목걸이)를 녹여서 만든 형상에다 절을 하며 믿고 받드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심신이 항상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절대자(또는 힘)에게 의지하여 안위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무능은 어떤 것이 절대자인지 그것도 찾을 안목이 전혀 없다. 그래서, 이 종교 저 종교를 기웃거리며 절대자가 있는 집을 찾아 이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역사도 길고 무게감도 좀 있는 종교 사이에서 이사를 다니는 사람은 있지만,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자기 목에 걸고 있던 금목걸이를 녹여서 만든 형상에다 절을 하며 받드는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자기 목이나 귀에 걸고 다니던 금붙이를 자기가 직접 녹여서 만든 물건을 받들어 모시려고 여호와(예수)를 헌 신짝 버리듯하는 예수쟁이가 있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예수교 역사(?) 속에는 여호와(예수)를 받들던 수 백만의 쟁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주머니에 들어 있던 금붙이를 모아서 금송아지를 빚어 놓고, 그것을 받들어 모시기로 결정하는 장면이 있다.
여호와가 직접 화가 나서 악을 쓰며 떠들어대는 사건의 전말이다. 따라서, 여호와(예수)가 그렇다고 하는 것이니까 그렇겠지 뭐! ㅎㅎ...

일단, 바이블을 보기로 하자.

[모든 백성(히브리 족속)이 그 귀에서 금(金)고리를 빼어 아론(제사장=모세의 형)에게로 가져 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금송아지 모형)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럴 때는 하나님이 맞는 것 같다. ㅎㅎ)이로다." 하는지라.]

(출애굽기 32;3~4)


위의 바이블 이야기는 여호와를 받들던 히브리 족속이 어느 날 갑자기 여호와를 버리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금붙이를 모아 만든 금송아지 형상을 신(神)으로 모시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 하나 따져 보기로 한자.

(1) 히브리 족속은 430 년 동안 애굽(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신을 받들고 모시는 족속이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되는 것일까?
오늘 날의 예수쟁이들이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평생 동안 여호와(예수)를 받들며 여러 가지로 착취당해야 되는 경우와 비슷한 꼴이라고 하면 될까?
"뭣 주고 뺨 맞는다."는 속담과 아주 썩 잘 어울리는 그런 경우가 아니고 뭘까?
결국, 히브리 족속은 여호와의 앞잡이 모세의 영도에 따라 애굽의 종살이에서 탈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민족들은 탈출이란 것을 하지 않고도 잘만 살아가건만...

(2) 히브리 족속이 애굽에서 탈출한 후, 모세는 시내산(Sinai)으로 10 계명을 받으러 올라가고, 나머지 백성(적어도 300만 명 이상)들은 산 밑에서 대기하고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지 모세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에, 백성들이 불안해 하면서 아우성쳤다고 한다. "여호와 대신에 우리가 다른 신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받들자."고.
그러자, 제사장 아론(모세의 형)이 백성들에게 말했다. "여러 분! 모두들 귀에 걸고 있는 금귀걸이와 손가락에 끼고 있는 금반지를 내 앞으로 가져 오시오. 그것으로 금송아지를 빚어서 우리가 그것을 신으로 받들기로 합시다."
마침내, 금송아지가 만들어졌고, 히브리 족속은 여호와 신 대신에 그 금송아지를 믿고 받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기에 웃기는 이야기들이 더 많지만, 그것들을 더 말해야 될까?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만 가져도 예수교의 밑 뿌리는 이미 거덜이 난 셈인데, 뭘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제삼자 2013-04-24 (수) 16:40
[죄악 벗은 우리 영혼]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
우리를 찾는 구주 예수 곧 오라 하시네.

우리를 오라 하시는 말 기쁘게 듣고 순종하세.
구주를 믿기 지체 말고 속속히 나가세.

주 오늘 여기 계시오니 다 와서 주의 말씀 듣세.
듣기도 하고 생각하니 참 진리시로다.

(후렴)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 아~멩!
--------------------------------------------

위의 노랫말은 예수쟁이들 입에서 불려지는 소위 찬송가라는 것이다.

갈 길이 훤히 보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더 비춰 주고 또 더 가르쳐 줄 것이 남아 있을까?
그 갈 길이란 것이 전지전능한 신(神) 쪽에서 훤히 비춰주는 길이라면, 더 더욱 무슨 의심스럽거나 미심적은 찌꺼기가 남아 있을까?

세상 이치를 훤히 알고 있는 사람은 누가 가르치거나 권고하거나 할 필요 없이 스스로 알아서 척척 전진해 나아 갈 것이다.
이미 전지전능한 신 쪽에서 갈 길을 훤히 밝혀 주셨기 때문에 인간 쪽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노랫말을 보면,
주(예수) 앞에 빨리 나가자는 둥,
예수가 우리를 찾고 있다는 둥,

예수의 말을 듣고 기쁘게 순종하자는 둥,
예수 믿기를 지체하지 말자는 둥,
또, 예수의 말을 듣자는 둥,

듣고 생각해 보니 역시 진라는 둥,
죄악을 벗고 보니 영혼이 기쁘다는 둥,
예수가 하늘에 있다는 둥.....

미친 녀석들 아니야!
말이 많다는 것은 그 많은 말만큼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인데, 누가 뭘 훤히 밝혀 줬다는 게야?
저 노랫말에서 떠드는 내용을 보면, 아는 것이 깨알 만큼도 없음이 분명한데, 모르는 것들이 무슨 사설이 그렇게 길지?

결국 "예수를 믿자" 이런 말이잖아?
"믿는다"는 말은 "모른다"와 내용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거늘.....
정신 좀 차리자. 예수쟁이들아!
제삼자 2013-04-27 (토) 03:36
[제 아비 뜻도 제대로 모르는 예수]


[나(예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 7;21~23)


(1)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떠드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는 어림없는 말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2) 사실상 예수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대단히 힘들게 말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바울 이후, 엉뚱한 예수쟁이들이 나타나서 천국을 똥값에 흔들어 팔고 있다.

"서울에 가 본 사람보다 가보지 않은 놈이 서울 풍물을 더 잘 안다."고 한다. 
예수보다 바울이 여호와의 뜻과 천국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요즈음의 예수쟁이들은 예수보다도 바울보다도 천당을 더 잘 알고 있다. 웃겨! 


참고; 바울에 의하여 똥값에 팔리는 천국은 차츰 기회가 있으면 만나게 될 것이다.
바울 이후 예수쟁이들에 의하면, 먼지 털이개를 들고 예배당에 들어가서 벽과 천장과 바닥을 털면 구원과 은혜와 용서가 무진장 쏟아진다. 그러나 어림 서 푼 어치도 없는 수작이다.


(3)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더라도 천국에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목사(신부)와 예수쟁이들처럼 여호와(예수)를 증거하고 전도에 열을 올리더라도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여호와(예수)를 증거하기도 하고, 설명해대는 짓도 어처구니가 없는 엉터리 말장난일 뿐이다. 


(4)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 즉 사람의 병(또는 불구)을 고쳐주는 일을 많이 했더라도 천국과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예수는 사람의 병을 귀신에 의한 현상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서 특별히 따져 봐야 될 것이 있다. 이 세상에는 귀신이란 것이 있을 수도 없으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해 본 사람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귀신을 쫓아내어 병을 고쳐주는 훌륭한 사람은 천당에 갈 수 있느냐 또는 천당에 갈 수 없느냐 따위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5)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시행했더라도 역시 천국과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뇌까려 봐도 천국은 보이지 않는다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여기의 권능(기적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짓은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이므로 천당이 어떻느니 지옥이 저쩌느니 따위는 가당치 않은 말장난일 뿐이다. 


(6) 위에 열거한 종류의 종자들이 찾아와서 애걸을 하여도, 예수는 "내가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고 딱 부러지게 거절하겠다는 것이다.


(7) "양가죽을 쓰고서 노략질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예수)게서 떠나라." 이것이 예수쟁이들을 향한 예수의 외침이다.
예수도 예수쟁이들이 <양가죽을 쓴 늑대들>이란 것을 알았던가? 동병상련으로?
사실상, 예수쟁이 중에 <양가죽을 쓴 늑대> 아닌 자가 일을까?

(8) 그러나, 이상의 말은 예수를 인간이라고 가정할 때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만약, 예수를 신(神)으로 승격시켜 놓고서 본다면 위의 말들은 모두가 만행(蠻行)질에 귀착된다.
같은 말이라도 아이의 말이 다르고 어른의 말이 다른 것이며, 사람이 하는 말과 신이 하는 말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바이블 속의 내용들이 사람의 말이라 해도 문제가 크거늘, 만약 그것이 신의 말이라고 한다면, 인류를 위하여 이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9) 예수가 지칭하는 "내 아버지" 또는 "하나님"은 다른 기회에 해설하기로 하자. 예수는 단 한번도 "여호와"라는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
또, 예수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당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예수 자신도 제 아비 여호와의 뜻을 모르는 상태에서 제 멋대로 힁설수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수는 제 아비(여호와)의 뜻대로 행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아니, 예수는 제 아비의 뜻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제삼자 2013-05-10 (금) 09:51
[왜들 죽기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예수쟁이들이 꽤나 즐겨 부르는 찬송가라는 것이다.
한 번 음미해 보기로 하자.

1.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이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2. 광야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 넘어 눈보라 세차게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3.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불교에서는 "인생은 고(苦)"라고 말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교에서도 "괴로운 인생 길" 또는 "찬 바람과 눈보라치는 인생 길"로 파악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서 빨리 고생스러운 이 세상을 떠나 행복만 있는 하늘 나라(천당?)에 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밤낮으로 저렇게 노래를 불러대고 있을까?

그러나, 노래만 저렇게 불러대고 있을 뿐, 실제로는 하루라도 더 이 세상에서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는 예수쟁이를 못 본 것 같다.
왜일까? 뒈지면, 당장에 그 좋은 천당으로 직행일 텐데 왜 그렇게 죽기를 싫어할까?

그러고 보니, 예수쟁이들이 겉과 속이 다르게 주둥이로만 떠들어 대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주여!"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사랑!, 희생!, 봉사!" 등등,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말장난 아닌 것이 없다.

조금도 틀림 없이 정확하게 말해서, (1) 신도 속이고 (2) 사람(남)도 속이고 (3) 자기도 속이는 인간이 바로 예수쟁이 생활이다.  
명실공히(名實共-), 미꾸라지 새끼들보다 더 미끌대는 사기꾼들이로고!

제삼자 2020-02-16 (일) 10:02
[페르시아 대제국의 에스더 황후]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를 태우던 시절에,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께서 택하신 백성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이 중동 지방에다 조그만 왕국을 건설했었다고 한다.
왕국 이름을 <유다 왕국>이라고 했단다. 그런데, 이 왕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북 둘로 쪼개진다. 남쪽은 예전 이름 그대로 <유다 왕국>, 북쪽은 <이스라엘 왕국>이라 했단다.

<유다 왕국>은 350년 쯤 지속하다가 (신)바빌로니아 왕국에게 멸망당하고(BC 587년), <이스라엘 왕국>은 겨우 200년을 버티다가 앗시리아 왕국에게 멸망당한다.(BC722년)
결국, 여호와가 택한 백성이 건설했던 히브리 왕국(유다 왕국+이스라엘 왕국)은 겨우 350년 정도를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없어진다.

히브리 왕국 특히,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 많은 히브리 사람들이 바빌로니아 왕국으로 잡혀갔다고 한다. 이 때, 잡혀간 포로 사건을 "바빌론 유수"라고 한다.
그들 포로 중에 <모르드개>와 <에스더>라는 이름을 가진 4촌 남매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앗시리아도,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도 <페르시아 대제국>으로 흡수 통일이 되고 만다.

페르시아 대제국은 BC550년부터 BC330년까지 약 220년을 지속하면서 조로아스터(짜라투스투라)교의 <아후라 마즈다>신을 받드는 유일신 제국이었다.

포로로 잡혀왔던 4촌 남매 <모르드개>와 <에스더>도 결국은 바빌로니아 왕국에서 <페르시아 대제국>으로 이관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가 4촌 누이 <에스더>가 페르시아 대제국의 황후로 간택이 되었더란다.
고려의 기씨가 공녀로 차출되어 몽고로 끌려갔다가 마침내 대원제국 <순제>의 황후로 올라 선 것처럼,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 포로로 끌려간 <에스더>가 페르시아 대제국의 아하수에로왕(크세륵세스황제)의 황후로 올라섰다고 한다. 헐!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각설하고)


시간이 오래 흐르자, 포로로 잡혀 온 히브리 족속과 페르시아 대제국 국민 사이에 알력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4촌 누이 에스더(황후)와 모의한 후, 아하수에로왕(크세륵세스 황제)에게 고하고, 또 허락을 받아 인간 사냥을 벌인다.
"베갯머리 송사"라고 했던가? 부부가 함께자는 잠자리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바를 속살거리며 청하는 일 말이다.

<에스더>의 미모가 경국지색(傾國之色=임금이 미혹되어 나라가 위기에 빠져도 모를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자)의 미색을 갖춘 여자였던 모양이다.
전쟁 포로로 끌려 온 노예 무리가 감히 대제국의 국민들을 상대로 인간 사냥을 할 수 있도록 황제의 허락이 내려졌다고 하니, <에스더>의 미모는 중국의 서시, 왕소군, 양귀비 그리고 초선까지도 능가하는 엄청난 절색이었던 모양이다.

** 예수쟁이들 중에는 <에스더>라는 이름을 즐겨 쓰는 여자들이 많다. <에스더>의 미모가 꽤나 부러웠던가 보다.
   그러나, 미색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녀의 무자비한 인간 사냥질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세상에나!
   잠시 후, <에스더>의 무지막지하고도 잔인한 인간 사냥질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그게 여성스러움일까?


그러면, 지금부터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한 구절 한 구절 보면서 히브리 족속의 인간 사냥질을 관람해 보기로 하자.!


1)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페르시아 대제국의 백성)을 쳐서 도륙하고, 도륙하고(실수로 두 번 쓴 것이 아님),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페르시아의 4개의 수도 중 하나)에서 500인을 죽이고 멸하고....유다인의 대적 하만(페르시아 대제국의 총리?)의 10아들을 죽였으나.... ]

(에스더 9;5~10)


미운 사람들을 도륙하고 또 도륙했다고 한다. 전쟁 포로로 잡혀온 노예들이 감히 승전국의 백성들을 상대로 죽이고 또 죽이고 지랄발광을 했던 모양이다.
아하수에로왕(크세륵세스황제)은 얼마큼 뛰어난 미녀에게 눈이 멀었기에 저런 인간 사냥질이 벌어지도록 허락했을까?
더구나, 페르시아 대제국의 수상이었던 <하만>의 아들 10명까지도 목매달아 죽였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이 인간 사냥질 사건은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의 섭리로 벌어지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도무지 이런 현상을 어떤 안목으로 보아야 신(神)의 섭리가 될까?
"신검(神劍)은 불살생(不殺生)"이란 말은 들어 봤지만, 이처럼 도륙을 일삼는 신(神)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2) [.....하만(페르시아 대제국의 수상)의 10아들의 시체가 달리니라.....
수산(페르시아 대제국의 4개의 수도 중 하나)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300인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왕의 각 도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자기를 미워하는 자 75,000인을 도륙하되....... 
아달월(히브리 족속의 12월 또는 6월) 13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14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에스더 9;14~19)


페르시아 대제국의 수상으로 있던 <아만>의 열 아들들이 히브리 족속들에 의해서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교리) 자체가 통째로 없었던 사건을 꾸며낸 말이지만, 여호와(또는 예수)를 믿고 받든다는 히브리 족속과 예수쟁이들의 잠재적 잔인성과 악독한 습성은 비슷비슷하다.
전쟁도 아닌 때에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도륙하고 또 도륙하는 재미"는 잠재 의식 속에서 대단히 통쾌했겠다.

사람을 도륙시키고 또 도륙시키고서 75,000명을 죽이고, 300명을 죽이고 또, 10명을 교수형에 처하고, 그 다음 날 그것을 기념하는 잔치를 베풀었다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예수쟁이들은 말한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사람들이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독자들이여!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이 정말로 신(神)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좀 더 시궁창에 쳐 박혀야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 이루어진 세상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우리 한국의 예수쟁이들은 아직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은 만큼 죽여 보지도 못했고, 
고관 대작의 아들들을 목매달아 보지도 못했고, 하루에 7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여 보지도 못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서 그 다음 날 그 기념으로 잔치도 벌여 보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바이블의 가르침대로 제 모습을 갖추려면, 좀 더 시궁창으로 쳐박혀서 지랄발광을 해야 제대로 된 예수교(쟁이)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전쟁도 아닌 때에, 인류 사회에서 하루 동안에 80,000여 명의 인간을 도살한 사건이 예수교의 지랄발광 말고 또 있었던가??
미국 시카고에 있는 유니온 도살장에서는 하루에 소 20,000마리까지 도살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는 말은 들어 봤다.


3)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또는 예수쟁이)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에스더 9;22)


하룻동안에 사람을 80,000여 명을 죽여 보니까, 마음에 평안을 얻게도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더란다. 대박!

이렇게 자기네들이 미워하는 사람들을 도륙시킨 날을 기념하여 매년 즐겼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이 인간을 상대하는 섭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잔인하고 반인륜적 가르침으로 세뇌시켜 얼빠진 인간,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예수교를 강 건너 불을 보듯 구경만 하고 있어야 되겠는가?

페르시아 대제국의 역대 황제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마즈다신의 대리자로서 신권정치를 폈었다.
여호와(또는 예수) 따위가 페르시아 대제국 속에 설자리는 있을 수 없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한 가지도 빠짐 없이 허구, 궤변 그리고 모순일 뿐이다.
제삼자 2020-02-18 (화) 15:17
[거듭 변명으로 일관하는 여호와]--미완성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사사기(士師記)란 책이 있다.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기 전 단계의 추장(사사) 시대를 그린 내용이다.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선민(選民)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탈출하여 모세 시대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기간이 40 여 년 연장되어 모세는 사막 벌판에서 객사하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시대에 대단히 잔인한 방법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들어간 것으로 되어있다.
재미있는 것은, 여호와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역사 시대보다 역사 이전의 시대가 훨씬 더 자세하고 많이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호와의 선민(選民) 이스라엘이 가나안 지방을 정복 장면을 보기로 하자.


[....여호와(예수교의 신)께서 유다(이스라엘 12지파 중 하나)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山地)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鐵兵車)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 ; 19)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기로 여호와로부터 약속을 받은 때는 600여 년 전의 일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약속을 할 당시에는 그 가나안 땅에 이미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죄악이 트집을 잡을 만큼 많지를 않았다.
원주민을 모조리 때려 죽여만 그 자리에 이스라엘이 들어갈 수가 있는데, 아직 죄가 없는 원주민들을 때려 죽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서 종살이를 수 백년 하는 동안에 가나안 지방의 원주민들의 죄악이 가득해 진 것이다.
이제, 가나안 지방의 원주민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고, 이스라엘이 대신 들어가서 터전을 잡고 살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박!
마침내,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에 의한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됐던 것이다.
그런데, 정복 전쟁에서 여호와(전지전능한 신)의 힘으로도 철병거로 무장한 강력한 원주민은 몰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호와의 변명이 등장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너희(이스라엘)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壇)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내가 그들(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사사기 2 ;2~3)


여호와는 분명히, "강력한 철병거로 무장한 원주민을 정복할 수 없어서 그대로 둔 것이다."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기(여호와) 말을 청종치 않았기 때문에 쫓아내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 쫓아내지 못한 원주민들이 이스라엘의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원주민의 신들이 이스라엘의 올무(올가미)가 될 것이라 한다.

남의 땅(나라)을 빼앗으면 주인(원주민)으로부터 당연히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을 뭣에 쓰려고 예언하는가?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여호와의 다음 변명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여호와께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예수쟁이들)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하사 남겨두신 열국(列國)은.....]

(사사기 3 ; 1~6)


여호와께서 중동지방 일대(또는 전 세계)를 모두 정복하지 않고 일부 적(敵)들을 남겨 놓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장차, 전쟁을 모르는 이스라엘(예수쟁이들)의 후손들에게 전쟁 교육을 시키기 위한 자료로 남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분명히, 여호와는 철병거로 무장한 강력한 원주민을 정복할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먼 훗날, 전쟁을 모르는 예수쟁이 후손들에게 전쟁 교육용으로 적(敵=원수)을 남겨 놓았다." 고 변명을 늘어 놓고 있다..


[이스라엘(예수교인)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이방의 잡신)들과 아세라(우상)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을 섬겼더니...]

(사사기 3;7~8)







여호와의 변명이 계속 바뀌고 있다. '강력한 적'이기 때문에 정복할 수 없었다고 했다가, 전쟁을 모르는 후손을 위하여 '전쟁 교육용'으로 남겨 놓았다로 바뀌더니, 여기서는 이스라엘(예수쟁이들)이 여호와 목전에서 악(惡=잡신 섬김)을 행하여 그 징벌자(심판자)로 쓰기 위하여 남겨 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단히 중요한 궤변이 들어 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잘 받들지 않는다고 벌을 받는데, 여호와를 받들지 않는 구산 리사다임은 무슨 복으로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문제는 여호와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여호와 목전에서 악을 저질러야 하고, 그러면 여호와는 진노하여 적이 쳐들어오게 하고, 또 다시 이스라엘은 여호와에게 부르짖어(눈물의 기도)야 하며, 그러면 다시 여호와는 은혜를 내려 전쟁을 일으키고 그리고 승리하게 해준다.
제삼자 2020-02-19 (수) 05:46
[코로나19 감염자 및 그 직계 가족도]


신(神)이 못된 짓 또는 잡놈 짓을 줄기차게 쏟아 낼 경우, 욕을 먹어도 될까 아니면 여전히, 신(神)이니까 욕를 해서는 안되는 일일까?
그러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사람이든 신(神)이든 불문하고 "못된 놈" 또는 "잡놈"이라고 성토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어떤 신(神)이 있어 사람으로부터 각종 예우와 칭송까지 받고 있다면, 그 신은 그 사람을 보호해 주어야 할까, 아니면 골탕을 먹여야 할까?
특히, 그 신(神)은 전지전능한 재주가 있어서 못하는 것이 없는 존재라고 한다. 그런데도 이 신(神)은 자기를 칭송하며 따르는 사람을 상대로 갖가지로 장난을 치고 괴롭히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되는가?
그래도 여전히 신(神)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를 상대로 "못된 놈" 또는 "잡놈"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1) 신낭(腎囊=불알)이 상한 자나, 신(腎=자지)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2) 사생자(私生子=사생아)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10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10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신명기 23;1~3)


교회에 다니지 못할 자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불알이 터진 자와 자지를 베인 자
2. 사생자(사생아)는 10대까지
3.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에 속한 자는 10대 뿐 아니라 영원히

1) 불알이 터지고, 자지를 베인 자 뿐만이 아니다.  각종 병자와 병신들도 교회에 다녀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이들은 더러운 자들이기 때문에 거룩한 여호와(또는 예수)의 전(殿=집)을 이들에 의하여 더럽힐 수 없다."고 한다.

** 참고;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자도 당사자 및 그 직계 가족은 교회에 다녀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새로 만들자.
          <코로나 19>에 감염됐던 자도 100% 깨끗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깨끗해야 할 교회를 위해서...

2) 사생자(사생아)들은 10대까지 교회에 다닐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은 자기들의 조상 10대까지 조사하고서 그 교회라는 곳을 드나들고 있는지 묻고싶다.
자기 조상 10대까지 조사하고도 아무 탈이 없는 자손이라면, 그는 분명히 지지리도 못난 혈통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근대 이전의 사회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남성 위주의 완력의 세상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남성 우위 세상에서 사생아 하나 만들지 못한 남성(인생)이라면, 그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낙오자였을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전근대 사회는 남존여비 사상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고, 이런 현상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바이블 속의 주인공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 등등은 물론, 예수교 역사 속의 주인공들은 계집이 하나 둘이 아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논하려는 초점(焦點)은 다른 곳에 있다.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은 10대 뿐 아니라, 영원히 교회에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은 구원의 길은 없고, 오직 지옥행의 길만 있다는 말이다.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의 희망 사항 없이 멋모르고 동원된(태어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유불문 지옥행이란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하고 치를 떨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러면,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동원되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찾아보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롯(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이 소알(지명)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굴(窟)에 거하였더니, 큰딸이 작은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道理=방법이나 수단)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人種)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 하니라....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 하니라....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큰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창세기 19;30~38)


<롯>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칭송되는 아브라함의 조카이다.
<롯>도 여호와의 명을 따라, 조상과 고향을 버리고 타향(가나안 땅)에 와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들이 어느 날 <롯>의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여호와는 1명이 아니라 2명인가 3명이었었다. 
그 때, 마을 사람들이 여호와에게 해코지를 하려고 <롯>의 집에 몰려들어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사뭇, 분위기가 험악했다.
다급해진 <롯>은 몰려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 딸 둘을 내어 줄 테니, 그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좋다. 그 대신, 우리 집에 오신 여호와는 건드리지 말라."며, 여호와를 감싸주던 인물이다.

이만하면, <롯>은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여호와를 모시고 받든 사람이다.
물론, 이것이 고마워서, <롯>이 살고 있는 동네 소돔성과 고모라성이 여호와의 유황불로 멸망될 때, <롯>과 그 두 딸을 구해 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끝까지 <롯>의 가정을 돌봐줬어야 옳다. 그러나, 여호와는 <롯>과 그 두 딸을 세상의 도리(道理)조차 실천할 수 없는 불모지에다 쳐 박아 놓았던 것이다.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으로 만들어 놓고.)

이리하여, 부녀(父女) 사이의 불륜(不倫)이 발생하게 되고,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제1차적인 책임은 여호와에게 있고, 제2차적 책임은 두 딸에게 있으며, 제3차적 책임은 아비(롯)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무조건 여호와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책임이 네 연놈에게 있든, 한 놈에게 있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의지(意志) 없이 계속해서 멋모르고 태어나는 모압과 암몬의 후손들이 왜, 이유 불문 지옥으로 가야 되는가? 이것이 무슨 놈의 법인가"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을까?
누가 세상에 태어나고 싶다고를 했나? 누가 천당엘 가고 싶다고를 했나? 누가 뭘 어쨌다고 했나?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천태만상)들을 동원시켜(창조시켜) 놓고서 이게 뭣하는 지랄일까?

이것이 천지를 창조하고 다스린다는 신(神)의 섭리란 말인가? 이것이, <롯>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여호와를 보호하고 받든 대가(代價)로 얻어지는 결과인가?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잡놈임이 분명하다. ("잡놈" 알지?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자기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배반했다 하여 그 이스라엘을 흔적도 없이 멸망시킨 신(神) 이다.
반면에, 여호와는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 신을 받드는 페르시아 대제국을 승승장구하도록 돕기도 한다. (여호와 혼자서 자화자찬하며 떠드는 말이지만)
도대체, 여호와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려면 어떤 기준에다 맞추어야 되는가?
도무지 원칙도 없고, 뒤죽박죽으로 변덕과 폭력을 휘두르는 그 여호와의 그 만행질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잡놈> 신이 맞다. 잡놈 여호와! 잡놈 예수! 하모!


** 참고; 세상에 여자가 없어서 <롯>은 두 딸과 붙어서 <모압>과 <벤암미> 이렇게 두 아들이 태어났다고 했다.
         <모압>은 모압 족속의 조상이고, <벤암미>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고.
         그런데 말이다. 이 세상에 여자라고는 <롯>의 두 딸 뿐이었다. 그래서, <롯>이 두 딸과 붙었던 것이다.
          그러면, 두 아들<모압>과 <벤암미>는 어떤 여자들과 붙어서 후손을 만들었을까?
          결국, <모압>과 <벤암미>는 제 어미(또는 이모)와 붙어서 후손을 번성시켰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어째서 두 딸이 아비와 붙는 얘기만 하고, 두 아들들이 어미(또는 이모)와 붙는 얘기는 안 했을까?

          역시, 바이블(예수교의 경전)은 두뇌 조직이 엉성했던 종교 사기꾼이 조작하다 실수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바이블은 신의 작품일 수가 없다. 예수교는 복마전(伏魔殿=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일 뿐이다.
제삼자 2020-02-24 (월) 09:17
[주인을 골탕먹이는 예수쟁이의 뿌리]


예수교는 기적질로 시작해서 기적질로 끝나는 종교이다. 사실상, 예수교에서 기적질을 빼 놓으면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예수교의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이라는 녀석들은 <코로나19>에서 전혀 어떤 기적질도 보여주지를 못하고, 자빠진 강아지 앙살하듯, 예수쟁이들을 통한 변명질만 계속하고 있다. 

(각설하고)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의 조상 중에 <아곱>이란 녀석이 있다고 한다.
시간과 지면 관계상 긴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야곱>은 속임수가 능한 사기꾼이요 잡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이 잡놈 <야곱>편 만을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아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까지도 하사해 주었다고 한다.

오늘 날의 예수쟁이들이 한결 같이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이유가 모두 그들의 조상 <야곱>을 쏙 빼닮은 것에 있으리라.
이런 예수쟁이들의 사기꾼 기질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걸까?


<야곱>은 자기의 쌍둥이 형 <에서>에게서 속임수를 써서 장자권까지 탈취했다고 한다. 역시, <아곱>은 사기꾼이요 잡놈이었음이 분명하다.
결국, <야곱>은 형 <에서>의 보복이 두려워 먼 곳에 살고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야반 도주를 하게 된다.
외삼촌 <라반>의 두 딸을 아내로 차지하는 대가(代價)로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14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자기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머슴살이(양치기)를 더하게 된다.
야곱은 외삼촌과 계약을 맺는다. "계약 이후에 태어나는 새끼 양(羊)들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얼룩진 것> 등은 모두 <야곱>의 품삯으로 하기로."

그리하여, 외삼촌 <라반>은 그 날로, 양떼 중에서 검은 것과 점 있는 것과 얼룩진 것을 모두 추려서 사흘 길 이상의 먼 곳으로 보낸다.
계약 이후에 새로 태어나는 양 새끼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얼룩진 것>들이 태어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 이다.
그래야, 사위 겸 조카인 <야곱>의 품삯을 줄이고, 자신(라반)의 재산은 그만큼 더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조카 <야곱>이나 외삼촌 <라반>이나 신(여호와)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는 때가 없는 녀석들이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렇게 성품들이 고약할까? 요즈음의 예수쟁이들과 조금도 기울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외삼촌 <라반>의 잔꾀에도 불구하고,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는 <야곱>과 합심 노력으로 <야곱>이 치는 양떼에서는 <점 있는 것>과 <얼룩진> 양 새끼들이 쏟아져 태어난다.
<야곱>의 양새끼들이 쏟아져 태어난 것이다. 마침내, <야곱>은 거부(巨富)가 됐다고 한다.
외삼촌 <라반>은 여호와의 실력을 얕잡아 보았던가? 아니면, 여호와와가 자기편이라고 오판을 했던 것일까?
적을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요, 적을 모르면 백전백패(百戰百敗)의 원리를 몰랐던 것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교미)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교미)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실(實)한 양이 새끼 밸(교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교미)게 하고, 
약(弱)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약(弱)한 자(양)는 라반의 것이 되고, 실(實)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야곱)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창세기 30;37~43)


양이 교미(交尾)를 할 때, "나무 가지를 보게 하면 얼룩진 것과 점 있는 새끼를 배고", "그 나무 가지를 치우면 흰 새끼를 배더란다."
그래서, <야곱>은 건강한 "양들이 교미할 때는 나무 가지를 보여 주고", "약한 양들이 교미할 때는 나무 가지를 치워 보이지 않게 했다."고 한다. 
결국, 건실한 새끼 양들은 야곱의 것이 되고, 병약하고 비실대는 새끼 양들은 외삼촌 <라반>의 것이 되었더란다.

이유야 어떠하던, 남의 머슴살이를 하는 놈이 자신의 것은 충실하게 하고, 주인의 것은 망쳐 놓는 녀석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더구나, 나무 가지 하나를 보여 주기도 하고, 보여 주지 않기도 하는 것으로 부(富)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놈으로서 그것이 할 짓일까?

또, 양들이 교미할 때, 나무 가지를 보여 주면 얼룩얼룩한 새끼를 낳고, 나무 가지를 보여 주지 않으면 하얀 새끼가 태어날까?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계속 이런 장난질만 계속할 텐가? 유치원 아동들에게 동화 얘기로 각색하면 재미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머슴살이 하는 놈이 주인집 재산을 망쳐 놓는 내용은 어린이 교육에 대단히 좋지 않을 것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들은 장난으로라도 세상에 굴러다니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교의 가르침) 내용을 밝혀 주어도 꿈쩍을 하지 않는 예수쟁이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예수교에 바이블 말고 다른 가르침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예수쟁이들은 아예 귀(또는 눈)를 틀어 막고 사는 종자들인가? 오호통재라!
제삼자 2020-02-26 (수) 05:03
[요한계시록과 신천지 예수교 ]


**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66권 중 마지막 권(책) 즉, <요한계시록>은 예수의 제자 중 하나인 요한이 혼자서 장구치고 북치며 춤추는 <원맨쑈>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어느 종교 사기꾼이 훨씬 나중에 민심을 현혹시키는 <정감록>이나 <토정비결>처럼 슬쩍 삽입시켜 놓은 사기극이지만...)


작금, 중국과 우리 한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가 전염병 <코로나19> 때문에 초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한 술 보태서, 우리 한국에서는 <신천지 장막성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수교> 때문에 훨씬 복잡한 아수라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신천지> 예수교의 수장(?) 쯤 되는 사람이 주장했다고 한다. "나(자기) 만이 <요한계시록(바이블)>을 해석할 자격(또는 권한)이 주어져 있다."고. 헐!

그게 사실이라면, 역시 "그 나물(예수=여호와)에 그 밥(신천지)"이라는 속담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예수교의 으뜸 교리가 아닐 수가 없다고 하겠다.
왜냐 하면, 예수(여호와의 아들)도 <신천지> 예수교의 수장과 같은 말을 떠들어놨기 때문이다.

예수 녀석도 말했다. "내가 비유로 설교를 하는 이유는 천당의 비밀(내막)은 아무한테나 알려 줄 수 없는 비밀이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보아도 보지 못하게 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마가 4;10~12)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바이블)> 내용도 어중이 떠중이 아무나 알 수 없게 비밀로 감추어 놓고서 <신천지> 예수교의 수장에게만 그 <요한계시록> 내막을 터득할 수 있는 자격(권한)이 허락되었다." 이런 말이렸다.

종교 또는 종교쟁이가 할 수 있는 생각이요, 말이요, 행동이라고 여겨지는가?
과연, <요한 계시록(바이블)>이 <신천지> 예수교의 수장에게만 자격(권한)이 허락된 비밀일까?

사실 상, 수 백 년 전까지만 해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주교 이상의 예수교 간부들만 읽을 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라틴어로 바이블이 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 말로 씌어 있다.
따라서, 오늘 날은 어느 누구라도 바이블을 읽고 비팔할 수가 있다. 신천지 예수교 수장에게만 바이블(요한계시록)을 해독할 권한(자격)이 주어졌다는 말은 자기 네 신 여호와(또는 예수)를 시궁창으로 추락시키고 욕 먹이는 짓일 뿐이다.


<요한계시록(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한 구절을 보기로 하자.

-----------------------------------------------------------------
[나(요한=예수의 제자)는 이 책(작게는 요한계시록, 크게는 바이블 전체)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말해 둡니다.

누구든지 여기(바이블)에 무엇을 덧붙이면 여호와께서 그 사람을 벌하실 때에, 이 책에 기록된 재난(災難)도 덧붙여서 주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떼어 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의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여호와께서 떼어 버리실 것입니다.

이 모든 계시(요한계시록 또는 바이블 전체)를 보증해 주시는 분이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요한계시록 22;18~20)
-------------------------------------------------------------------


(1) 요한계시록(바이블)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에다 아는 체를 하며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사람이 있을 경우, 여호와는 그 사람을 벌줄 때에, 바이블에 열거되어 있는 모든 재난을 덧붙여서 무더기로 안겨 준다고 한다.

*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신천지 예수교가 얻어 먹고 있는 욕과 수난이 바로 요한계시록이 예언하고 있는 무더기 벌칙의 시작이 아닐까?
자기 입맛에 맞도록, 자기 유리하도록 바이블 내용을 풍선처럼 부풀려서 가르친 재난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2) 반면에, 요한계시록(바이블)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에서 아는 체를 하며 무엇인가를 생략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에게서는 바이블에 열거된 보상(報償) 중에서 그 몫들을 떼어버리겠다고 한다.

* 신천지 예수쟁이들은 앞으로 한참 더 고통과 모욕을 당할 것 같은데, 이것도 요한계시록이 예언하고 있는 벌칙이 주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아는 체를 하며 바이블에 있는 흉칙한 내용을 슬쩍 감추고서 가르친 벌칙으로 재난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3)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가장 크게 벗어나서 제 멋대로 해석해대는 무리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라는 점이다.
바이블 내용을 제 입맛에 맞도록 이현령 비현령 식으로 해석하는 무리가 바로 목사(또는 신부) 이하 예수쟁이들 및 각종 신학자들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어떤 종파를 불문하고 가장 비인간적으로 돌아가는 무리가 예수쟁이들 말고 누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천국이 마치 자기네의 것이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복마전(伏魔殿=마귀가 숨어 있는 곳)에 똬리를 틀고 앉은 독사의 새끼(예수가 창안한 용어) 노릇에 여념이 없는 무리가 천국을 욕심내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 바이블이 정말로 신의 가르침이라면, 신천지 예수교(쟁이)를 비롯해서 어느 예수교 종파를 막론하고 지옥으로 쳐박히지 않을 예수쟁이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가장 어기며 살아가는 종자들이 예수쟁이들 말고 누가 있겠는가?

아니다. 바이블의 가르침을 120%~150% 실천해 내며 살아가는 종자들이 바로 예수쟁이들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바이블의 가르침보다 더 흉칙하고 악독한 시범이 있을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에다 자기 입맛에 맞도록 무엇인가를 보태거나 빼버리며 해석하지 않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4) 두뇌 조직이 엉성했던 수 천 년 전의 종교 사기꾼이 당시의 신관(神觀=신에 대한 관념이나 견해)을 적당히 나열해 놓고는 이 말들을 보증해 주는 분(=예수)이 있기 때문에 더욱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뻥을 치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남겼다는 요한(예수의 제자)은 제법 큰 소리를 치며 우쭐거리고 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라고.

그런데, 말이다. 진짜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예언(요한계시록)을 써 놓은 사람도 사기꾼 <요한> 한 녀석이며, 
**예언을 보증하는 분이 예수라고 떠드는 사람도 사기꾼 <요한> 한 녀석이며,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라고 떠들며 생쑈를 부리는 사람도 사기꾼 <요한> 한 녀석이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기꾼 <요한> 혼자서 장구치고 북치며 떠들어 대고 있다.
**또,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며 예수교 속에서 돈을 벌고 밥을 먹고 사는 사람도 사기꾼 <요한> 한 녀석임이 분명하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손과 발 그리고 입을 어디에다 팔아 먹었는가? 왜, 무엇이든지 일일이 <요한>의 입을 빌어서 변명(말)하고 있을까? 
예수교 역사를 통틀어서 바이블(요한계시록 포함해서) 내용을 가감 없이 정확하게 풀어 낸 예수쟁이가 있었을까?
바이블 내용을 가감 없이 풀어내고 해석을 했는데도 <신천지>를 비롯해서 예수교 종파가 자그마치 35,000개 넘게 되었을까? 
결국, 바이블은 예수쟁이들 각자가 제 입맛에 맞게 가감하면서 해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여호와로부터 그 무서운 벌을 받지 않을 자신 있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
결론은 간단하다. 예수쟁이들 중에 자기네 신(여호와 또는 예수)을 믿거나 두려워하는 자는 단 1명도 없다는 결론이다. 
예수교(쟁이)는 어떤 종파를 불문하고 신(神)을 조금도 겁내지 않는(믿음이 전혀 없는) 가짜 또는 사기꾼들의 복마전(伏魔殿=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일 뿐이다.
---------------------------------------------------------------------

(5) 예수교의 모든 것(위에서 말해지는 요한계시록을 비롯하여 모든 바이블 내용을 포함해서)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만 떠들어질 뿐이다.
"예수교의 신(여호와 또는 예수)은 벙어리이므로 그 존재를 사람의 입을 통해서만 설명(변명)해야 한다."
이에, 예수쟁이들은 즉시 "그렇지 않다." 고 반발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고 반발하는 예수쟁이도 다름 아닌 사람이란 사실을 예수쟁이들은 감지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여호와(또는 예수)에 대하여 설명(변명)할 때, 사람이 아닌 존재가 그 일을 대신하는 경우를 만나 본적이 있는가?
예수교 속에서 돈을 벌고 밥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의 입을 통하여 악담과 저주와 공갈과 협박을 반죽해서 설명(변명)되는 바이블 이야기, 하루 속히 폐기 처분시켜야 된다.
<요한계시록>은 신천지 예수교의 수장만이 해석할 자격(또는 권한)이 주어져 있다고 하기에 그런가 어떤가 싶어서 제삼자(필자)도 한 몫을 거들어 봤다. 아맹 할렐루야!

** 가장 중요한 결론; 사실 상, 위의 썰은 다 필요 없는 말이다. 
   왜냐 하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통째로 허구(虛構=가짜, 거짓)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위의 썰은 바이블이 옆에 있어서 그냥 읽어 본 독후감일 뿐이다.
제삼자 2020-02-27 (목) 15:28
[예수교가 너희의 무엇을 찾아 준다고?]-헐!


옛날, 어느 마을의 어느 집 사랑방에 마을 청년 5~6명이 모여 환담을 즐기고 있었다.
아랫목에 이불 하나가 깔려 있고, 모두들 그 이불 속에 발(다리)을 넣고, 원형으로 빙 둘러 앉아서 떠들고 있었다.
겨울철 농한기 때면 농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한 참을 왁자지껄 떠들다 보니,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누군가가 여러 사람의 발에 덮여 있던 이불을 들췄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들춰진 이불 밑에는 여러 사람의 발과 다리가 얼기설기 얽혀져 있었다. 도무지, 어느 다리가 어느 사람의 다리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5~6명의 마을 청년들은 자기 다리를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상황에 놀래어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 때, 배고픈 나그네가 밥술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그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사랑방에서 청년들의 아우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급한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아, 나그네는 불문 곡직 방문을 열었다. ?????..........

5~6명의 청년들이 아랫목에 앉아서 다리들을 얼기설기 포개 놓고는 울상이 되어 아우성치는 모습이 보였다.
"왜들 그러십니까?"
"다리들이 얽혀서 어느 것이 내 다리인지 몰라서 이럽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어느 청년 하나가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그 다리들을 찾아드릴 테니, 밥 한 상 대접해 주시겠습니까?"
"아이구, 선생님, 누구신지요?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사례하구 말구요. 제발 도와 주십시오."

그러자, 나그네는 다시 바깥 마당으로 내려가 커다란 몽둥이 하나를 집어 들더니, 방으로 들어 서기가 무섭게 다리들이 얽혀 있는 부분을 향하여 내리쳤다.

5~6명의 청년들의 입에서는 동시에 "아야!"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야" 소리와 거의 동시에 얼기설기 얽혀서 찾을 수 없던 다리들은 어느 사이에 주인을 찾아 가 있었다.
나그네가 푸짐한 밥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예수쟁이들이여!
자신의 얼(정신)을 어디에다 섞어 놓았기에, 어디에다 빼앗겼기에, 누구에게 무엇을 한탄하면서 찾아 달라고 하는가?
예수교가 너회(예수쟁이)들의 무엇을 찾아 준다고? 몽둥이 찜질이라도 한 대 얻어 맞아야 정신들을 차릴 텐가?
자기 정신을 어디에다 팔아 먹고서 예수교에서 찾으려 하는가? 예수교가 무엇이관대, 이처럼 못난 짓들을 하는가?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어디로 가려고 이처럼 미쳐돌아가는 걸까?
제삼자 2020-03-08 (일) 14:15
[십자군전쟁의 실패와 코로나19의 창궐]--미완성


중세 유럽에서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예수교가 결정적으로 와해되기 시작한 사건은 십자군전쟁의 실패가 아니었던가 싶다.
보이지도 않는 신(여호와=예수)을 믿는다는 녀석들이 자기 마누라는 믿지를 못해서 철판(또는 가죽)으로 <정조대>를 만들어 단단히 채워 놓고서 보무도 당당하게 출정을 했던 사건이 십자군전쟁이었다.

십자군전쟁은 그 목적이 이슬람교도들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096년부터 1270년까지 8차례에 걸쳐서 거의 200년 동안 예수(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원정 전쟁을 감행했지만 모든 것은 헛수고로 끝이 났다.
그렇게도 믿고 의지했던 신(神)이었건만 전혀 아무런 반응이 없는 담벼락이 예수교의 신 예수(또는 여호와)임을 알게 해준 사건이 십자군전쟁이었다.
(전지전능한 신을 받들고 있는 종교의 성지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궤변이지만.)

복잡한 사건 분석은 생략하기로 하고.....
십자군전쟁의 실패와 그 내막의 더러운 모습들은 중세 유럽의 미개했던 예수쟁이들의 생각으로도 예수교가 가짜라는 것을 터득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마침내, 십자군전쟁의 실패는 예수교가 와해되기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유럽에서 무너져내리던 예수교는 그것을 만회하려는 수단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및 신대륙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그 예수교의 세력 확장 정책에 말려든 나라들 중 하나가 우리 한국이다. 우리 한국은 <신생 예수교국>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한국의 예수쟁이들이야 말로 예수교 역사 상 가장 믿음 좋고(?) 열렬한 광신도들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우리 한국의 예수쟁이들보다 더 믿음이 좋고 십일조 및 각종 재물을 여호와(또는 예수) 앞에 열심히 바치는 나라는 예수교 역사 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예수교 지도자들은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속에서도 <예배>라는 것을 강행하겠다고 날뛰는 이유이리라.
죽으나 사나 <예배>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열어야만 <돈>을 거두어 들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인류 사회를 어떻게 만들던 말던.....전염병으로 이웃들이 어떻게 되던 말던.....그 많은 들어올 돈을 포기할 수는 없는 유혹이 예수교 지도자들의 유일무이한 심보짝(마음을 쓰는 속 바탕)일 것이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이 유럽의 예수교가 무너져내리는 사건이었듯, 오늘의 <코로나 19>는 우리 한국의 예수교가 박살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신천지 예수교는 물론, 대형 교회들이 전염병이라는 대재난 속에서도 국가 정책과 이웃의 안위는 전혀 배려하지 않고 제 멋대로 "예배를 강행하겠다."는 모습은 마침내 예수쟁이 전체의 등돌림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대형 교회일수록 한 번이라도 <예배> 집회를 거르면, 그 많은 돈의 손실을 아까워서 견디기가 힘들 것이다. 헐!
그러나, 아무리 무디고 고집불통의 예수쟁이들일지라도 자기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알거든!
예수도 말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고.
이런 귀한 목숨을 값싸게 취급을 당하면서도 강행되는 <예배>를 아무 생각 없이 수용할 예수쟁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번 <코로나19>는 우리 한국에서 예수교가 결정적으로 부서지는 사건을 만들어 갈 단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서 신(神)이 존재한다면 이럴 수가 있을까? 여호와(예수)가 악신(惡神)이 아니라면, 이럴 수가 있을까? 등등으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뭔가 눈치채는 바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중세시대 즉, 암흑시대의 미개인들도 신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날 줄을 알았거늘, 오늘 날의 밝은 대명 천지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예수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면....글쎄 그게 정상적 현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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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자 17/11/14 6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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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여호와(예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면]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이 있다.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운명이 기박하다는 말이다. 흔한 말로 미인은 팔…
제삼자 17/09/10 5598
728
*52[죄인(죄악)과 병자(질병)]* 다음 이야기들은 조금 쯤 신경을 써야 들리는 내용이다.  즉, <죄인>이라는 개념과 <병자>라는 개념은 비교할 …
제삼자 17/05/07 7398
727
*51[예수 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임을 자처하는 예수가 한 말이라 한다.그…
제삼자 17/03/17 7912
726
*50[예수교(바이블)에서 가장 큰 사기극]** 예수교(바이블)의 활동 중에 사기 행각 아닌 것이 없지만, 필자는 다음 사건이 예수교(바이블)에서 가장 큰 사…
제삼자 15/04/09 35139
725
*49["돈을 많이 바쳐야 된다."는 말만 있는 예수교!]예수교(또는 바이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느 것일까?"지난 일요일, 달나라에 …
제삼자 14/12/10 35950
724
*48[예수교의 핵심이 되는 문젯점]어떤 사람이 말했다."나는 사과나무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사과나무에 배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어떤가? 되는 말 같은가?…
제삼자 14/05/25 16605
723
*47[반기련이 가야 할 길]부창부수(夫唱婦隨);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부부 사이의 화합하는 도리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1) "목적이 좋…
제삼자 14/04/02 8812
722
*46[장하다! 반기련이여!]한국 사람들 사이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특이한 정서에 정(情)이란 것이 있다. 정(情)이란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람과 사람 …
제삼자 14/02/11 8628
721
*45[예수교의 뿌리]** 예수교의 뿌리가 무엇(누구)인지 아는 예수쟁이가 있을까?   여호와를 세상에 최초로 소개한(발명해 낸?=만들어 낸?) 사람은 모…
제삼자 13/12/11 9831
720
*44[귀하디 귀한 내 자식의 친구로는?]   수 십 년 전(50 여 년 전) 일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J라는 젊은이가 하나가 있었다. 그는 술과 여자…
제삼자 13/11/29 8015
719
*43[아주 커다란 착각(궤변)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1) 착한 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울…
제삼자 13/11/14 7526
718
*42[지상 최대의 사기극 제1막과 제2막 공연]* 참고; 시간이 없는 독자는 저 밑으로 가서 =====선 아래 <사기극 제1막>부터 읽어도 된다.[근거 제1]--구약…
제삼자 13/10/11 7296
717
*41[예수교는 예수도 감지 못한 자력 신앙(自力信仰)]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교는 타력(他力) 신앙이고, 불교는 자력(自力) 신앙이다."라고. 불교는 무슨 …
제삼자 13/08/30 9507
716
*40[예수일당은 3 년 동안 무엇을 한거야?] 예수쟁이의 으뜸되는 목표는 <믿음 생활>이다. 그래서, 예수쟁이의  다른 이름도 <신앙인(…
제삼자 13/08/26 8541
715
*39[개망신]  * 개망신--아주 큰 망신.   망신--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기의 명예나 체면 따위가 손상을 입음.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
제삼자 13/07/21 8067
714
*38[혼인할 배우자를 찾음] 어느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구혼(求婚) 광고 3 개가 게재되어 있었다.  (A) [혼인(결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소유…
제삼자 13/07/06 8083
713
*37[군자 삼변(君子三變)에 비춰 본 예수교]예수의 조상 중에 <유다>라는 사람이 있다. 이 유다가 며느리(다말)와 불륜으로 간음하여 자식이 태어나는데, …
제삼자 13/06/21 8771
712
*36[협잡질(挾雜-질)]협잡질(挾雜-질); 그릇된 행동으로 남을 속이는 짓.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하는 일(예: 나라를 다스림)을 가리켜 경-륜(經綸)이…
제삼자 13/05/14 8376
711
*35[보복(?)이 두려워 숨어 다니는 神]*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이 숨어 다니기도 하고, 도망다니기도 한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1) [유대인들이 가로되,…
제삼자 13/04/30 7906
710
*34[두 연놈의 배때지를 꿰뚫어 죽이기] 여호와(예수교의 신이라 함)의 질투심이 발동했을 때, 초기 진화를 하지 않으면 한 나라와 민족이 송두리 째 없어질 수…
제삼자 13/04/09 7400
709
*3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짓]"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무슨 일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과 견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무슨 …
제삼자 13/03/25 7663
708
*32[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고등학교 2 학년 때, 윤리 과목 선생이 결근을 하자, 교장 선생이 대신 교단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그 때, 교장 선생으로부터 처…
제삼자 13/02/12 8655
707
[논리 중의 논리-논리의 진수(眞髓)](가정) 부산 앞 바다에서 유난히 꽁치가 많이 잡히는 해가 있다고 하자.(결론) 그렇다면, 그 해에는 서울 사람들은 서대…
제삼자 13/01/28 7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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