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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교)쟁이가 가시밭길을 가다?-정말?]-헐!
글쓴이 : 제삼자  (219.♡.30.247) 날짜 : 2020-10-16 (금) 02:38 조회 : 189 추천 : 3 비추천 : 0
[예수(교)쟁이가 가시밭길을 가다?-정말?]-헐!


* 가시밭길을 가다--힘 겹고 험한 삶을 살다.


우리 한반도에서는 1950년의 <한국 전쟁> 즉, <6.25 동란>을 전후 해서 소위 <빨갱이>로 몰려 죽여진(또는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不知其數=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매우 많음)로 많다.
그런데 말이다. 그 <빨갱이>로 몰려 죽여진(또는 죽은) 사람들 중에 과연 "<빨갱이>가 무엇인지 5분 이상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아니다. 지금 당장에도 "고등 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빨갱이>가 무엇인지 5분 이상 동안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다음, 대한민국을 전복시킬 만한 국법에 저촉(抵觸=위반 되거나 거슬림)이 되어 "사형(死刑=죄인의 목숨을 끊는 형벌)에 처해져야 될 만한 <빨갱이>가 몇 명이나 될까?"

<빨갱이>로 몰려 처형이 된 사람이라면, 그런 정도의 <빨갱이>라면, <빨갱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적어도 5분 이상 동안 논리적(또는 학술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는 전문가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6.25 동란>을 전후해서 <빨갱이>로 몰려 죽여진(또는 죽은) 사람들 중에 과연 <빨갱이>가 정말로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서 죽여진(또는 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지금까지도 상대 정적(政敵=정치적으로 서로 대립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빨갱이>라며 악을 쓰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상대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사람들 중에는 <빨갱이>가 정말로 무엇인지 5분 이상 동안 논리적(또는 학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빨갱이>로 몰려서 죽여진(또는 죽은) 사람이나 상대를 <빨갱이>로 몰아서 죽인 사람이나 과연 그<빨갱이>란 것이 무엇인지 5분 동안 이상을 논리적(또는 학술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몇 %나 될까? 

그러면, 예수(교)쟁이가 무엇인지 그것을 5분 이상 동안 설명을 할 수 있는 예수쟁이는 몇 명이나 될까?
예수(교)쟁이가 된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인생길을 걷기 위해서 준비하는 길인가? 아니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인생길을 가시밭길로 바꾸기 위해서 희생하려는 각오인가?"
예수교의 이론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차치(且置=내버려 두고 문제를 삶지 않음)하고,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비단옷을 입고 행복의 길을 걸으려고 온 것일까? 아니면, 온갗 고초를 겪는 가시밭길을 걷기 위해서 온 것일까? 

예수(교)쟁이가 된다는 것은 예수를 닮아 보겠다는 각오일까? 아니면, 세상을 골탕먹이겠다고 심술(心術=짓궂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을 키우는 심보인가?

(각설하고)


이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예수쟁이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예수의 가르침)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 10;29~30)

위의 바이블 얘기를 들으면서 "금세에100배를 받는다." 소리와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는 달콤한 말만 들리는 예수쟁이가 태반일 것이다. 
아니다. 100% 예수쟁이에게 "100배를 받는다."는 말과 "영생을 받는다."는 소리만 들릴 것이 명명백백하다. 예수(교)쟁이 노릇을 해먹기가 이렇게 쉬울 줄을 뉘 알았으리요? 세상에나! 맙소사!
위 아래를 가릴 것 없이 예수교가 통째로 썩어 문드러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위의 예수의 말이 예수(교)쟁이들에게 "행복한 길을 걸으라."라고 요구하는 가르침인가? 아니면 "가시밭길을 걸으라."라고 요구하는 가르침인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떠들며 말장난이나 하라고 요구하는 가르침인가? 아니면, 피눈물 나는 힘 겨운 고난의 험한 길을 걸으라고 요구하는 가르침인가?

역병 <코로나19>라는 어려움을 만난 세상을 향해서 "순교를 할 각오가 돼 있다."면서 말장난만 하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짓이 가시밭길이요 고난의 길인가?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왜 순교를 하겠다는 것일까? 예수(교)쟁이의 순교와 <코로나19>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하나만 더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예수쟁이들) 것임이요.>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예수쟁이들)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예수쟁이들)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예수쟁이들)가 배부를 것임이요.>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예수쟁이)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일요.>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예수쟁이들)가 여호와를 볼 것임이요.>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예수쟁이들)가 여호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예수쟁이들) 것임이라.>

나(예수)를 인하여 너희(예수쟁이들)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예수쟁이들)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예수쟁이들)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예수쟁이들)의 상이 큼이라.>......"]

(마태 5;2~12) 


위의 바이블 내용은 소위 예수교의 8복(福) 즉, 예수쟁이들에게 돌아 갈 8가지 복(福=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대단히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는 큼직 큼직한 <축복>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말이다. 
전제 조건(前提條件=어떤 일이나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 앞서 이루어져야 하는 조건)에 대해서는 귀를 틀어 막고서 <축복> 부분만을 끌어 안고서 춤을 추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따져봐야 될 것이다.

(1) "천국은 예수쟁이들의 것이다."
(2) "예수쟁이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3) "예수쟁이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4) "예수쟁이들은 배부를 것이다."
(5) "예수쟁이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6) "예수쟁이들은 신(神=여호와)의 얼굴을 볼 것이다."
(7) "예수쟁이들은 신(神=여호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8) "천국은 예수쟁이들의 것이다."


어때? 예수쟁이들의 귀와 뇌리에는 위의 8가지만 들리고 기억되지? 다음 말은 그림자도 없지? 그렇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야 된다."
"세상을 화평케 해야 한다."
"마음이 청결해야 된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야 된다."
"성품이 온유한 자라야 한다."
"애통하는 자라야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라야 한다."

이상의 전제 조건은 단 한 마디도 들리지도 않고 기억에도 없지?
그러니까, 8가지 축복을 털도 뽑지 않고 통째로 입에다 넣고는 좋아 죽을 지경이 됐다 이거지? 헐!
이런 인간 말종(末種=행실이 아주 나쁜 사람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면, 어떻게 예수쟁이 노릇을 할 수가 있을까?
이런 인간 말종이 아니라면, 어떻게 역병 <코로나19>로 허덕이는 세상을 향해서 심술(心術=짓궂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을 부리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세상에나!


이왕지사,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하나만 더 보기로 하자.


[그 날(말세)에 많은 사람(예수쟁이)이 나(예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예수쟁이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예수)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예수)게서 떠나라." 하리라.]

(마태 7;22~23)


말세 때가 되면, 많은 예수쟁이들이 예수 앞에 와서 말할 것이라 한다.
"주여! 우리가 주(主=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며 아는 체를 하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예수가 저들(예수쟁이들)에게 단호(斷乎=매우 과단성 있고 엄격함)히 말하게 될 것이라 한다.
"예수쟁이들아, 내(예수)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예수)게서 썩 꺼져라 하리라."

어떤가? 아직도 8복(福)이 예수쟁이들의 것이라고 여겨지는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며 말장난이나 하고.....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신음하고 있는 데에다 대고 심술(心術=짓궂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이나 쏟아내는 짓을 하고도 저 8복(福)이 자기 것이 될 것이라고 출썩대는 예수쟁이들!
무엇이 잘못되면 저런 인간 말종(末種=행실이 아주 나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생겨나는 것일까? 세상에나!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19.♡.30.247) 2020-10-16 (금) 02:40
[예수교와 바이블과 여호와(또는 예수)의 3자 관계]


(1) TV에서 방영하는 광고를 보면 예쁘게 생긴 탤런트를 내세워서 공산품(工産品)을 선전하는 경우를 다반사로 경험할 수 있다.
이 때, 예쁜 탤런트의 선전 광고 내용과 공산품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답은 "아무 관계도 없다."이다.

심지어, 그 예쁜 탤런트는 자신이 선전하는 그 공산품을 단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특히 미국)에서는 단 한번도 사용해(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 상품(공산품)을 선전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눈 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소비자(사람)을 우롱하는 셈이다. 법이 정하는 1~2 번의 사용으로 그 상품의 질을 알아 낼 수가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떤 상품과 그 상품을 선전하는 인기 탤런트(또는 운동 선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한 발짝 더나아가서, 그 탤런트(운동 선수)가 떠들어대는 내용도 그 상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비자(사람)들은 TV에서 많이 선전되는 상품에 매료된다. 이런 현상이 인간의 본래 모습인 것 같다.


(2) 그러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 내용은 예수교의 실체(여호와 또는 예수)와 어떤 관계일까? 역시, 정답은 "아무 관계도 없다."이다.

인기 탤런트(또는 운동 선수)가 선전하는 광고 내용과 상품의 내용에는 아무 상관이 없듯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내용과 예수교의 실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 뿐이다. 헐!

더 나아가서, 목사(또는 신부)의 설교 내용과 예수교의 실체와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목사(또는 신부)도 예수교의 실체를 조금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예수쟁이(사람?)들은 설교를 잘하는(?) 목사(또는 신부)를 찾아 다니며 신앙심을 키운다? 대박!
이런 바보짓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난센스(nonsense=어리석은 행위)가 있을까?

재차 삼차 언급하지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과 목사(또는 신부)들의 설교 내용은 예수교의 실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허구(虛構=사실이 아닌 일을 사실처럼 꾸며서 만듬)일 뿐이다.
더 나아가서, 모든 예수쟁이들의 언행도 예수교의 실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궤변(모순)일 뿐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모순, 궤변,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그 것이 존재하는 곳에 인류의 평화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예수교가 있는 곳에 인류의 평화는 없다(없었다).
예수교는 인류 역사가 만들어 낸 가장 커다란 실수요, 돌이킬 수 없는 가장 커다란 시행착오(施行錯誤)일 뿐이다.
제삼자 (219.♡.30.247) 2020-10-16 (금) 02:41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에게 개 돼지 취급되는 사람들]


우선, 바이블(예수교의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1) [(예수 가라사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태 7;6)


"거룩한 것과 진주를 개와 돼지에게 주지 말라."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의 아들 예수의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거론되는 <개>와 <돼지>는 진짜 개와 돼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서 예수가 말하는 <개>와 <돼지>는 어떤 인간(사람)의 부류(部類=서로 구별되는 특성에 따라 나눈 갈래)를 지칭하는 말이다.
<개>와 <돼지>는 예수(교)의 안목으로 볼 때 등외품(等外品=등급 안에 들지 못하는 물품)에 속하는 지스러기(고르고 남은 찌꺼기나 부스러기) 못난 인간을 뜻한다. 대박!

또, 예수가 말하는 <거룩한 것>과 <진주>는 여호와(또는 예수)의 말씀(=복음 즉, 천국에 가는 방법)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의 귀한(?) 가르침을 <개>와 <돼지>에 해당하는 아무 사람에게나 마구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말이다.
그렇다면, 이 곳(반기련 게시판)의 <안티기독인>들이야 말로 예수가 말하는 개와 돼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데, 여기(반기련 게시판)에 와서 여호와(또는 예수)의 말씀(?)을 헌 신짝 내던지듯 아무렇게나 쏟아내고 있는 무리들은 무슨 종자들일까?

불특정 다수가 모여 있는 공공 장소는 말할 것도 어뵤고, 지하철, 남의 종교 안마당 등등에는 예수가 지적하는 개와 돼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이런 곳에서 목청이 터져라 하고 소리지르며 무차별로 아무에게나 그 거룩한(?) 것들을 마구 내던지듯 쏟아내는 예수쟁이들의 그 광태(狂態=미친 사람과 같은 짓)는 무슨 의미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2) [너(예수쟁이)는 말씀(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警責=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음)하며 경계하며 권(勸=하도록 부추김)하라.]

(디모데후서 4;2)


위의 바이블 내용은 사람들에게 예수교 전도하기를 주저(躊躇=머뭇거리고 망설임)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전도하기를 적극적으로 대시(dash=일을 저돌적으로 추진함)하라는 강력한 요구인가?
"<개>와 <돼지>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예수(교)의 가르침을 주지 말라."는 경고와 전도 행각은 저돌적으로 펼쳐야 된다는 이 곳의 적극적인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것일까?

그런데, 말이다."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이 속담은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도 절감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여호와(또는 예수)도 사람의 속 마음을 알아 보려고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총 동원하여 애타게 시험을 하고 있지 않던가?
그렇거늘, 어떻게 <개>와 <돼지>에 해당하는 사람을 구별하여 <거룩한 것>과 <진주>를 주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예수교 속에는 <사이비> 또는 <이단>이란 것이 들어 있다. 그러면, 그 <사이비>와 <이단>이란 무엇일까?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거룩한 것과 진주)을 <개>와 <돼지>에게 잘못 던져준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바로 그 <사이비>와 <이단>의 출현이 아닐까?
결국, "거룩한 것과 진주를 개와 돼지에게 던져주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전혀 그 방법을 찾을 수가없는 헛수고의 요구가 아닐까?


한 가지 더. 작금, 역병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허덕이고 있는 형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속에서도 나 몰라라 하고 갖가지로 심술(心術=짓궂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을 부리며 떼를 쓰는 예수쟁이들의 행패도 예수의 가르침(거룩한 것과 진주)을 <개>와 <돼지>에게 잘못 던져준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고, 예수의 가르침이 거룩하고 진주 같다는 말은 아니다. 세상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예수교가 보탬을 줄 수 있는 방법은 1개도 없고, 여전히 실술만 쏟아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1. 예수가 말하는 <거룩한 것>과 <진주>라는 것이 예수교 속에 있기는 한 것일까? 또,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구별하지?
2. 예수가 말하는 <개>와 <돼지>에 해당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여 찾아 낼 수가 있을까?
  <사이비>와 <이단>의 존재로 보아 예수(또는 여호와)도 구별해 내지 못한 <개>와 <돼지>를 어떻게 찾아 내지?
3. 이 지구 상에는 24억 명의 예수쟁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1년이 다 되도록 <코로나19>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예수(또는 여호와)에게 매달려 있다는 말인가? 세상에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3) [성령(聖靈=예수교의 신)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傳)하지 못하게 하시거늘....비두니아(소아시아 지방)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靈)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니아(마케도니아=유럽 지방)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여호와가 저(유럽)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사도행전 16;6~10)


바울(또는 예수쟁이) 일행이 터어키 반도(아시아) 일대에서 예수교를 전도하려고 했으나 성령(聖靈=예수교의 신)과 예수의 영(靈)이 가지 못하게 하여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발칸 반도(유럽) 쪽으로 가려고 힘썼더니 그것은 되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의 신(神)은 전도를 해도 되는 곳과 전도를 해서는 안 되는 곳을 구별하여 정해 놓고 있다는 뜻이다.

즉, 유럽 쪽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해 주어도 좋은 사람들이고, 아시아 쪽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해 주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아시아 쪽의 사람들이 바로 <개>와 <돼지>에 해당하는 등외품들이었던 셈이다. 대박이다! 헐!


그런데, 말이다.
요즈음, 아니지, 명 백 년 전부터 예수교는 남의 집 울타리까지 부수고 들어가서 아무 곳에서나 전도 행각을 벌이던데, 그 현상은 예수의 영(靈)이 허락한 장소인가?
"<개>와 <돼지>에게는 거룩한 것과 진주를 주지 말라."고 가르치던 예수교가 끝내는 남북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쪽으로는 총 칼로 폭력을 휘두르며 남의 울타릴 부수고 들어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날강도 짓을 하게 되던데....이 걸 어떻게 말(글)로 다 할 수가 있을까? 


15~18세기는 물론 19~20세기까지도 예수교가 전성을 이루던 유럽 열강은 아메리카와 인도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며 제국을 건설했다. 여기에 일본, 미국, 소련 등도 맹렬하게 합세를 했다. 이것이 제국주의이다.
이 제국주의에 기대어 세계 각국의 울타리를 부수며 쑤시고 들어가서 전도 행각을 펼치기에 여념이 없던 예수교!
제국주의에 희생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등의 여러 나라 사람들은 <개>와 <돼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특히,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예수쟁이들의 노예로 전락하여 팔려다니는 개 돼지 만도 못한 종자들이었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 도륙의 대상이 되었던 개 돼지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노예들과 도륙의 대상이었던 원주민들이 예수교의 전도 대상이 되어 마침내 오늘날에는 이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예수쟁이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바이블 벨트>라고 불리는 곳에 근본주의 예수쟁이 또는 복음주의 골수분자 예수쟁이들이 몰려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라틴 아메리카와> <미국의 바이블 벨트> 지역이야 말로 지금으로서는 <개>와 <돼지>가 없는 고급(?) 예수쟁이들만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대박!

오늘날 연말 연시가 되었을 때, 북미 지역에서는 "Merry Christmas!"라는 인삿말이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대신 "Happy Holday!"라는 인삿말로 바뀌어 있다. 예수교의 형편이 크게 망가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순수한 <영광>만을 누리시기 위해서 오늘 날의 여호와(또는 예수)는 이 곳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의 <바이블 벨트> 안에 콕처박혀 머물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이제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에게 영광이 나올 곳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역병 <코로나19>에서 예수쟁이들이 보여 주는 행패와 심술에서 알 수 있듯, 예수교 속에도 여호와(또는 예수)의 영광은 그림자도 없음이 백일하(白日下=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분명한 상태)에 드러난 상태이고. 웬 일이니!

(붉은 부분이 미국의 바이블 벨트 지역이다.)






[궤변(詭辯)을 반박하기가 이렇게 힘들줄이야!]-성경 공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지루하지만, 바이블을 조금 길게 인용하기로 한다. 요한 14장 7절부터 14절까지니까 조금 길다. (요한14;7~14)


[(예수 가라사대)
(7절) "너희가 나(예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여호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여호와)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절)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여호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절) 나(예수)는 아버지(여호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12절) 내(예수)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여호와)로 하여금 아들(예수)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한 1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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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7절) ["너희가 나(예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여호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여호와)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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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예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여호와)도 알았으리로다."
이 말은, "너희는 현재 나(예수)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내 아버지(여호와)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같은 말로 연결되고 있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여호와)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라고.

바로 위에서 "예수를 알아야 여호와도 알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맥으로 보아 아직까지는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부터 너희가 여호와를 알았고 또,보았느니라."고 단정지어 말을 하고 있다.


예수를 알아야만 여호와를 알 수 있다고 떠들어 놓고서 아직, 예수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이제부터는 너희가 여호와를 알았고, 보았느니라."가 무슨 말일까?
여태까지 예수를 모르던 사람들이 순간에 갑자기 저절로 예수를 알게 되어 여호와도 알게 되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말이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여호와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라고 <과거형>으로 말이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제부터>라는 <미래형> 어휘에다 <과거형>으로 "알았고 또 보았다."가성립되는 말일까?

이렇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음미하려고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그 궤변적 모순이 너무도 복잡하게 얼기설기 얽혀 있어서 정신을 차릴 수조차 없다.
이것을 어떻게 신(神)의 말 또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문자적으로도 엉망진창이요, 문법적으로도 뒤죽박죽이요, 내용적으로도 얼기설기 두서가 없고, 신(神)의 말이라기에는 궤변 중의 궤변이요, 모순 중의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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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 [빌립이 가로되, "주(예수)여, 아버지(여호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예수)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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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은 예수의 말대로 예수와 오랜 세월(약 3년) 동안 침식을 함께 한 제자이다. 그런데, 문맥으로 보아, 빌립은 예수도 모르고 여호와도 모르고 있다.
그러기에 빌립은 "여호와를 보여달라." 고 떼를 쓰고 있는데, 예수 쪽에서는 "나를 본 자는 여호와도 본 자니라."라고 억지 말을 하고 있다.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제자)을 향하여 "나(예수)는 여호와 안에 있고, 여호와는 내(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느냐?" 고 윽박지르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예수의 입에서는 <"네가 알지 못하느냐?"> <"네가 믿지 못하느냐?">를 번갈아가며 끌어다 쓰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알다"와 "믿다"를 구분할 줄을 모르는 녀석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
그래서 그런가? 예수교는 <알게 하는 종교>가 아니라 <믿게 하는 종교>로 모든 것이 굳어진 종교가 아닌가 싶다.

"뒤주 안에 쌀이 담겨 있다."고 하자. 
그러면, 사람들은 뒤주라는 쌀통도 알고, 뒤주라는 쌀통 안에 담겨 있는 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안에 여호와가 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여호와를 알 수도 없고,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윽박질러가며 말을 하고 있다. "믿지 못하겠느냐?"와 "알지 못하겠느냐?"를 번갈아 섞어서 떠들고 있다. 무엇을 어쩌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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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 나(예수)는 아버지(여호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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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믿으라."
여기서부터는 "알지 못하느냐?"는 없어지고 "믿으라." 말을 강요하고 있다.

여전히, <여호와>의 존재와 능력을 보여줄 생각을 하지는 않고, 예수가 하는 말과 행위를 보고서 거기에서 "여호와도 믿고 예수도 보도록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내(예수)가 아버지(여호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세상에 이렇게 억지스런 말이 또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믿으라."는 말일까? 
그런데. 전 세계에는 예수(또는 여호와)를 믿는다고 출썩대는 예수쟁이가 약 24억 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 한반도에도 1,000만 명의 예수쟁이가 있다고 한다.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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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내(예수)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여호와)로 하여금 아들(예수)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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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호와의 존재와 능력이 판명되지 않았다. 예수 혼자서 "믿어 보도록 하라."고 제자들을 윽박지르고 있는 상황일 뿐이다.
그런데, 무엇이 어쩐다고? "나(예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고? "내(예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예수)가 시행하리라."고?

그렇다면, 지금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는 역병 <코로나19>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24억 명이나 되는 그 많고 많은 예수쟁이들이 다 무엇을 하고 있기에 <코로나19>는 꿈쩍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정부와 방역 당국을 향하여 <자빠진 강아지 앙살하듯> 발아을 하고 있유가 무엇일까?

아무리 읽어 봐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속에 말 같은 말이 반 구절도 없는데, 무엇을 읽고서 무엇을 믿는다고 출썩대고 있는 것일까? 24억 명이나 되는 예수쟁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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