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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일을 보면 열(가지) 일을 안다."는데...]
글쓴이 : 제삼자  (180.♡.240.52) 날짜 : 2019-09-07 (토) 15:05 조회 : 957 추천 : 3 비추천 : 0
["한 일을 보면 열 일을 안다."는데...]


"한 일을 보면 열 일을 안다."고 했다.

그런데.....

바이블(예수교의 신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열 가지 또는 백 가지가 아닌 5만 가지의 잘못된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도, 예수교(쟁이)들은 눈이 없는 건지 귀가 없는 건지 쇠귀신 모습을 하고서 그 놈의 복마전(귀신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  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다. 헐!


그래도, 또 다시 예수쟁이들을 선도하려는 마음에서 또 한(가지) 일을 지적하여 보여 주고자 한다. (내가 미친 짓을 하는 걸까?)
그렇다고, 예수교에서 똥값보다도 더 싸고 흔하게 굴러다니는 "이웃을 내 몸만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글)은 아니다. 제삼자(필자)에게 그런 이웃 사랑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엉터리 책(바이블)이 옆에 있기 때문에 이 글은 씌어지고 있을 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여담 한 마디.
 
민족의 scale은 그 민족이 살아가고 있는 땅덩이와 비례하는 것 같다.
중국 사람들에게 최고 최대 혹은 무한대를 의미하는 숫자는 9또는 9만이다.
인도 사람들에게 최고 최대 혹은 무한대를 의미하는 숫자는 8또는 8만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역시 땅이 작아서 그런지 그 scale이 겨우 5만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무한대의 숫자래야 겨우 "별 5만 가지가 다 있다."로 끝이다. 헐!

한국의 예수교는 "별 5만 가지 쓰레기가 다 들어 있는 시궁창이다."
따라서, 한국 예수쟁이들의 천국이라는 곳도 사실은 별 5만 가지의 더러움이 다 들어 있는 쓰레기통일 것이 분명하다.
(각설하고)
------------------------------------------------------

바이블(예수교의 신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예수가 한 말이라 한다.
이 때의 <십자가> 또는 <자기 십자가>란 무엇을 의미할까? 두 말 필요 없이 <희생 정신>과 그 <실천적 삶>을 의미하는 가르침일 것이다.
예수쟁이들은 물론 척하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며 읊어대는 명언(?)이다. 그래 안 그래? 대박!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남의 죄를 대신하여 받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여졌다고 한다.
재차 말해서, 
예수 스스로는 아무 잘못(죄)이 없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죄)을 갚아 주기 위하여 대신으로 희생당했다고 한다.

예수가 했다는 그 멋진(훌륭한) 말을 다시 한 번 더 읊어 보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라." 예수가 살아 있을 때, 예수가 자기 입으로 직접 떠들어 놓은 말이다.

그런데, 십자가라는 물건의 의미 즉, <희생 정신> 또는  <실천적 삶>은 예수가 자기 잘못 없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걸머지고 억울하게 뒈진 뒤에 생겨나야 되는 말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뒈진 뒤에,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말이어야 될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을 죽기 전의 예수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떠들어대고 있다.
------------------------------------------------------

우선, 참고로 바이블 몇 곳을 더 보기로 하자.

1)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태 10;38)
2)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 14;27)
3)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 16;24)

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가 8;34)
5)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가 9;23)
------------------------------------------------------

(1) 이상, 5개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구절은 예수가 그 제자들에게 직접 떠들어대는 <십자가>에 담긴 의미이다.
(2) 원래 십자가는 흉악범(중 범죄자)을 처형하는 로마 시대의 사형 집행 도구였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가 처형을 당한 이후에는 그 십자가를 남의 죄 또는 남의 고통을 대신하여 짊어지는 <희생 정신>으로 해석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위의 5개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구절은 예수가 죽은 뒤에나 생겨나는 의미(내용)이다. 그래 안 그래?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라."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기의 잘못(죄)은 없으면서도 남의 잘못(죄)을 대신 걸머지고 갚아 나가는 희생 정신 또는 실천 정신을 가지고 예수를 따르라는 말이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 걸머지고 십자가에 달려 억울하게(?) 죽은 것처럼, 예수쟁이들도 그런 정신으로 예수의 뒤를 따라야 된다는 말이 되겠다. 멋져부렀다. 헐!

(4) 예수가 과연 인류의 죄를 대신 걸머지고 희생되었는지 어땠는지 그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또, 예수쟁이들이 과연 희생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예수가 죽은 뒤에나 생겨나는 의미의 말을 살아 있는 예수가 직접 그 입으로 떠들어대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뒈질 때까지도 <예수의 죽음>과 <십자가>가 연결된 이야기에 대하여 일언반구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5) 예수는 3차례에 걸쳐서, 
자기가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잡혀 고난을 받다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따라서, 그 십자가에 <희생 정신>을 의미하는 내용이 담겨 있을 턱도 없다.

그런데, 살아 생전의 예수는 말하고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은 마태 10장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가 수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희생 정신?)이라는 예언은 3번에 걸쳐서 말해지는데, 그 첫 번째는 마태 16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십자가=희생 정신> 즉, 십자가에 희생 정신이라는 의미가 담기려면, 
적어도 예수의 수난에 대한 예고가 있은 다음이어야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수난에 대한 예언 속에도 십자가=희생 정신에 대한 의미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예수의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보기로 하자.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태 16;21)

여기의 예언에는 <십자가> 얘기는 그림자도 없다.
예수가 어떤 방법으로 죽여질 것이라는 말도 없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말하는 <자기 십자가>라는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다.
<십자가=희생 정신>은 예수가 죽은 뒤에나 생겨나는 말이어야 되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예수가 직접 떠들고 있다. 되는 말인가? 헐!

(6) 위에 열거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은 어떤 엉성한 두뇌 조직을 가진 종교 사기꾼이 삽입 편집시킨 모순(矛盾), 궤변(詭辯), 허구(虛構) 즉, 가짜(거짓)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모순, 궤변, 허구 속에도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값진 것이 있을 수는 있다. 소설, 영화, 연극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그렇지를 못하다. 바이블은 신(神)의 가르침이 아니다.

(7) 누군가가 38만 km에 이르는 전선(구리선)을 깔았다고 하자. 다시 말하자면, 지구에서 달나라까지 전선을 설치한 셈이다.
그런데, 그 전선의 어느 부분에서 1km 쯤 단절된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여기에 전류가 흐를까?
38만 km에 비하여 1km는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것이어서 아무 문제없이 전류는 흐르게 되는가?

그러면, 
그 전선 38만 km 중에서 37만 km가 끊어져 있고, 다만 1만 km만 연결되어 있다면 이 전선에 전류가 흐르게 할 수 있을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77,000줄로 이루어져 있다.
이 77,000줄 중 70,000줄은 맞는 말이고, 7,000줄은 틀린 말이라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신의 가르침이 담긴 책일까? 아니면, 잡서일까?
아니, 76,990줄은 정말로 멋진 말이고, 나머지 10줄은 엉터리 말이라면, 그 바이블을 신의 가르침이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 공자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라고 하면 모를까!

(8) 위의 바이블 내용에서 예수와 십자가 이야기는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는 허구(虛構)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와 바이블의 모든 것은 허구인가? 아닌가?
바이블은 
부분적으로 보든, 전체적인 흐름을 보든, 모순(矛盾)과 궤변(詭辯)과 허구(虛構)로 버무려진 잡서임을 알 수 있다.
결국은 바이블은 혹세무민을 위한 악서(惡書)일 뿐이다. 따라서, 예수교는 마귀의 소굴에 지나지 않는 무서운 집단이다.




*** 예수와 십자가에 얽힌 말은 예수가 뒤진 뒤에나 생겨나야 되는 말이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라."는 말을 예수가 살았을 때 직접 떠들었다고 해도 모순이고, 그 말을 후세 사람이 만든 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1인칭인 "나를"이 아니고 3인칭인 "예수")를 따르라." 이렇게 누군가가 예수가 뒈진 뒤에 떠들어 놨어야 제대로 되는 말이다. 그래 안 그래?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180.♡.240.52) 2019-09-07 (토) 15:07
[가짜 신과 진짜 신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가짜 신과 진짜 신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지?

다음은 예수교의 신(물론 진짜 신임) 여호와 쪽에서 가짜 신을 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마치 '개똥참외는 맡아 놓은 놈이 임자'라는 말인지 알기나 하고서 떠드는 말일까? 어쨌든, 대박!


[그 위하는 것은 삼림(森林=숲)에서 벤 나무요, 공장(工匠=목수)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목수 또는 기술자)들이 금과 은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서 있는)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禍=불행 또는 고통)를 주거나 복(福)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 10;3~5)

예수교의 진짜 신 여호와가 말하는 가짜 신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가짜 신은 삼림(森林=숲)에서 벤 나무로 만든 것이다.
2. 가짜 신은 목수가 그 연장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3. 가짜 신은 목수(또는기술자)들이 금(金)과 은(銀)으로 도금한 것이다.

4. 가짜 신은 못을 장도리로 박아서 든든하게 세워 놓은 기둥과 같은 것이다.
5. 그래서, 가짜 신은 말도 못하고,
6. 걸어다니지도 못하기 때문에,

7. 어디를 가려면, 사람이 메고 다녀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가짜 신이란다. 맞아!
8. 그래서, 가짜 신은 사람에게 화(禍=고통 또는 불행)를 줄 수도 없고, 복(福)도 줄 수 없는 허수아비라는 것이다. 헐!
9.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짜 신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대박!

그러면,
예수교의 진짜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말을 할 수도 있고, 걸어 다니기도 한다는 말인까?
여호와(또는 예수)는 돈이 필요할 때, 사람들의 헌금(사실은 갈취가 아닐까?)이란 것 없이 스스로 돈을 벌어 본 적은 있을끼?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의 집(신전 또는 교회)을 지어 본 적은 있을까? (묻는 쪽이 바보겠지만)
 
어쨌든, 여호와(또는 예수)는 진짜 신이어서 인간에게 벌(罰)도 주고, 복(福)도 줄 수 있는 자이므로 "오직 여호와(또는 예수)만 무서워하라." 이런 말이렷다. 대박!
먼저 말하면 그 말의 주인이네!

어쨌든, 예수교의 진짜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다음과 같은 분이시란다.


[여호와께서 그 능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庫間)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사람마다 우준(愚蠢=우둔)하고 무식(無識)하도다.]

(예레미야 10;12~13)


예수교의 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진짜여서
1. 땅을 짓고,
2. 세계를 세우고,
3. 하늘을 펴고,
4. 목소리로 물과 구름과 번개를 만들고,
5. 곳간에서 바람을 내실 수 있는 분이라 한다. 대박!

그런데, 사람(특히 비 예수교인)들이 우둔하고 무식해서 여호와(또는 예수)를 몰라 본다는 것이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미치고 팔짝 뛸 만큼 억울하고 답답하시겠다. 세상에나!

사람(특히, 비 예수교인)들이여!
어서 우둔과 무식에서 벗어나 여호와(또는 예수)의 그 훌륭한 재주를 인정해 드리자.
그리하여, 여호와(또는 예수)의 그 억울하고 미치고 팔짝 뛸 만큼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풀어 드리자. 대박!

이상은 진짜 신 여호와(또는 예수)가 가짜 신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예수교의 진짜 신 여호와(또는 예수)가 자신에 대하여 어떤 설명을 하는가 보기로 하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브렐(기술이 뛰어난 목수였던 것 같음)을 지명하여 부르고,
여호와의 신(神)을 그에게 충만(充滿)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공교(工巧)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곧
1. 회막(會幕=교회)과
2. 증거궤(證據櫃=궤짝=여호와)와 그 위의
3. 속죄소(贖罪所)와
4. 회막의 모든 기구(器具)와
5. 상(床)과 그 기구와
6. 정금 등대(精金燈臺)와 그 모든 기구와
7. 분향단(焚香壇)과
8. 번제단(燔祭壇)과 그 모든 기구와
9. 물두멍과 그 받침과
10. 제사직(祭司職=목사, 신부)을 행할 때에 입는 정교히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성의(聖衣)와 그 아들들의 옷과
11. 관유(灌油)와 성소(聖所)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한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출애굽기 31;1~11)


가짜 신은 공장(목수)이 만드는데 비하여,
진짜 신 여호와(궤짝)는 신(神)이 충만하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그리고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만들고 있음이 다르다고 한다. 그럴 테지!

가짜 신은 목수의 손에 의하여 나무와 금과 은으로 만들어지는데 비하여,
진짜 신 여호와(실제로는 궤짝)는 가쩌와는 달리 놋쇠가 더 들어가서 나무, 금, 은, 놋쇠로 만들어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박!


그렇다면, 가짜 신과 진짜 신 여호와(궤짝)는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오늘날의 교회 건물과 그 속의 모든 장식품들은 모두 가짜 신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일까?
저 위에서 여호와가 떠들고 있는 것들 중에, 오늘 날 지어지고 있는 교회(건물)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일까? 헐!

"똥 묻은 돼지, 겨 묻은 돼지 나무라는 격"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대박!




[예수교의 신이신 야훼(=여호와)의 능력]
 
 
[빛을 만든 것도 나요, 어둠을 지은 것도 나다.
행복을 주는 것도 나요, 불행을 조장하는 것도 나다.
이 모든 일을 나 야훼가 하였다.]-헐!
 
(이사야 45; 7)
 
저렇게 재주가 있고 능력이 있으면서도 세상을 이 지경으로 이끌고 있는 저 자(者)!
우리는 저 자(者)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될까?

저렇게 못돼 쳐먹은 녀석을 좋아라 따라 다니는 예수쟁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아니, 야훼(여호와)라는 녀석이 있기는 한거야?
야훼(여호와)란 녀석이 존재한다면, 저렇게 못된 녀석을 누가 만들어 놓은 거야?

시장에 가면 "없는 것만 빼 놓고 다 있다던데, 그래서, 이 세상에는 야훼(여호와)란 녀석도 있는 거야? 헐!





[궤짝]


** 궤짝--(1) 물건 따위를 담기 위해 나무로 만든 네모난 통을 두루 이르는 말.
          (2) 옛날 한 때, 예수교의 신 여호와 녀석을 담아서 들고 다니던 나무 상자.

   옛날에는 사과 따위 과일을 담는 궤짝이 꽤나 예쁘고 큼직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생선 따위를 담는 통으로, 별로 볼품 없는 도구로 격하된(?) 물건이 꿰짝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궤짝에는 문어(생선?)를 담아 놓았을 때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여호와 녀석을 담아 놓았을 때 보다는!


(1)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를 태우던 시절에 예수교의 전지전능하신 신 여호와는 원래 <궤짝>에 담겨있었다고 한다.
오늘 날의 여호와(예수교의 신)는 실체가 없이 <말>로만 떠들어지는 허공중 같은 무존재(無存在)인 것에 비하면, <궤짝>일지언정 옛날에는 실체가 있었다고 하니 여호와는 대단한 유존재(有存在)가 아니었던가 싶다.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은 노략질(전쟁)을 할 때, 이 <궤짝>을 맨 앞에 들고 다녔다고 한다. 
목숨을 다투는 위험한 곳에서는 신을 모시고 있어야 나름대로 심신이 안정됐을 것이다. 헐!

히브리 족속은 중동 지방의 사막 벌판을 배회하며 노략질을 생업으로 삼던 떼강도들이었다.
사막 벌판에서 이동식 천막을 치고 살아가던 족속, 노략질(또는 강도질)이 생업이었던 족속은 항상 초긴장 상태의 무장을 하고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상대(원주민 또는 적)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어야 되는 노략질 전투(전쟁)가 바로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초긴장 상태로 삶을 영위해야 되는 족속에게는 <전지전능한 신>의 보호가 필요했을 것이다.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에게 이 <전지전능한 신>이 바로 <궤짝>이었던 것이다. 멋져 부렀다?
예전에는 <몽당빗자루>를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까 이것에 비하면 <궤짝신>은 그런대로 상당히 발전된 신 종류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대박!


(2) 히브리 족속들은 이 <궤짝>에다 수시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궤짝>에다 제사를 지낼 때 쓰려고 쇠고기국을 끓일 때,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녀석들이 제사가 시작 되기도 전에 커다란 고기 덩이를 슬쩍 먹어 치우곤 했다고 한다. 저런!
이에 화가 잔뜩 난 여호와는 그 보복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이 전쟁 통에 제사장 <엘리> 집안은 멸망을 당한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 중에 히브리 족속 중에서 30,000명이 도륙을 당하고, 그리고 이 전쟁에서 <궤짝(여호와 신)>을 적(블레셋)에게 빼앗기기까지 한다.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 녀석들이 여호와의 고깃덩이를 훔쳐 먹는 죄를 짓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 30,000명이 죽임을 당하고, 그 유가족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 셈이다.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 녀석의 세상 다스리는 법이 항상 이런 식이다. <꿰짝신>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다. 헐!


(3) 블레셋(적군)은 빼앗은 <궤짝(여호와)>을 자기네 신전의 다곤 상(블레셋 신) 옆에다 모셔 두었다고 한다. 자기네 신 옆에다 다른 신을 모셨다는 말이다. 왜,그렇게 했을까?
그런데, 다음 날 보았더니 <궤짝신>이 <다곤 상>을 쓰러뜨려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부러뜨려 놓았더란다. 대박!
그런데, 말이다. <궤짝신>이 <다곤 상>의 팔과 다리를 부렸뜨렸는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일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사실을 어떻게 블레셋 사람(히브리의 적)들은 알았을까?

** <궤짝신>의 위대한(?)기적질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전 작업을 펼쳐 놓는 속 보이는 짓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종교 사기꾼의 얄팍한 속임수가 솔솔 묻어난다고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여기에 홀려서 허덕이는 예수쟁이들은 뭐야? 세상에나!


그런데, <궤짝신>은 포로로 잡혀 간 적국에서 큼직한 도술을 부렸던 모양이다. "똥 싼 놈이 화내는 격"이라고나 할까?
다시 말해서, <궤짝신>은 그 나라(적국)에다 큰 환난을 일으켜 상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독종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참다 못한 블레셋(적)은 이 <궤짝신>을 히브리 쪽으로 다시 돌려 보냈다고 한다.

반환되어 돌아온 <궤짝(여호와)>이 너무 반가와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 <궤짝>을 둘러싸고서 그 속을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궤짝>을 들여다보는 짓"이 죄가 되어 <궤짝신>은 히브리 백성을 쳐서 50,070명을 살육시켜 버렸다고 한다.
<궤짝(여호와)>이 적진으로부터 돌아왔다 하여, 반가운나머지 백성들은 여호와의 낯짝(?)을 보려고 <궤짝> 속을 들여다 본 것 뿐인데, 그게 왜 죄가 됐을까? 그렇다고, 생사람을 50,070명 씩이나 죽여?

잡놈(여호와)의 괴상한 짓과 행패를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쨌든, 예수교의 신 <궤짝>은 그 비위를 맞춰주기가 꽤나 복잡하고 어려운 녀석이다. 그래 안 그래? 헐!



이상은 사무엘상 4, 5, 6 장에 있는 내용이다.

오늘 날의 밝은 대명 천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궤짝신>에 빠져 조국까지도 팔아 먹으려는 현상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오호통재라!


다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위에서 설명한 내용이다.


[...불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30,000이었으며, 여호와의 궤(짝)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사무엘 상 4;10~11)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짝) 앞에서 엎드러져...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있더라.] (사무엘 상 5;1~4)


[그것(궤짝)을 옮겨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毒腫)이 나게 하신지라.] (사무엘 상 5;9)


[벧세메스 사람들(히브리 족속)이 여호와의 궤(짝)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50,070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사무엘 상 6;19)
제삼자 (219.♡.30.247) 2020-02-03 (월) 01:01
[잡놈의 행패]


1) "빵이 없으면 고기(또는 과자)를 먹으면 되지."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의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라고 한다.

2) "왜들 밥을 굶지? 하두들 굶는다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도 딱 한번 굶어 봤네. 왜들 밥을 해 먹지 않고 굶지. 배고프게?" 
흉년이 들어 전국이 기근으로 몹시 허덕이던 조선 시대의 어느 지방관이 뱉어 놓은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에서 거론된 1)과 2)의 말은 꾸며낸 말이라고 한다. 그럴 테지. 사람 껍데기를 쓰고 있다면, 아무리 못된 성품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었을 게다. 그래 안 그래?


바이블(또는 예수교)의 내용은 전지전능한 신의 가르침이라 일점일획도 하자(잘못)가 없는 진짜만을 모아 놓은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예수교의 신(여호와=예수)은 잡놈에 해당할만 한가? 아직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대박!

일단,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1) [사람이 감당할 시험(시련)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는 미쁘사(믿음성이 있어서),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어떤 일이나 사실을 견디어 내거나 받아들임)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는 미쁘사 즉, 신의가 있으셔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험(시련)만을 내리신다고 한다. 얼쑤!
여호와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어렵고 힘든 시험(시련)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대박!

여호와는 사람에게 시험(시련)을 내릴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으셔서, 사람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럴 경우, 사람 쪽에서는 여호와의 은혜에 고맙다고 해야 할까? 헐!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든, 시련이란 것을 인간에게 덮어 씌우는 여호와의 이유가 무엇일까? 이해되는 사람 있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희망 사항을 제출하고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태어나지 않고는 오로지 여호와(또는 예수)의 일방적이고도 독불장군 식의 결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사람들을 동원(창조?)시켜 놓고서 이게 뭣하는 짓일까?

 
신(神)의 간여가 없는 자연 질서 속에서 태어나 적자생존을 위하여 시련을 당하기도 하고, 경쟁도 하는 것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神)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해 놓은 세상에서 자기 의지 없이 동원된 인간이 크든 작든 간에 시련(시험)을 당해야 될 이유가 무엇일까?

** 적자 생존--생물의 생존 경쟁의 결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는 현상.

 
이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으로는 불쌍하고 무능한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해서)에 대한 여호와의 잔인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악마라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하루 속히 자신이 허구(가짜=거짓)임을 만천하에 밝혀 자신이 뒤집어 쓴 악마적 누명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제놈(여호와 또는 예수)이 뒤집어 쓴 불명예를 벗을 수가 있을 것이다.

위에서 거론된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조선 시대의 지방관 이야기는 꾸며낸 말이라니까 그런대로 재미있는 일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바이블이(또는 예수교)이 정말로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는 신의 가르침이라고 박박 우긴다면, 이것이야 말로 "잡놈의 행패"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헐! 


 
"인간에게 시련(시험)을 내릴 때,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신다는 여호와(또는 예수), 이런 궤변도 있을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남겨 놓고, 암에 걸려 갖은 고생을 하다가 죽어가는 시련도 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한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던 남편 또는 아버지가 교통 사고를 만나 시체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남은 유가족이 겪는 고통과 슬픔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다. 그 죽은 사람에게 여호와(또는 예수)가 마련해 준 시련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느 것인가? 죽은 뒤에 천국의 복락을 준다는 말인가?


크든 작든, 인간에게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주어진 모든 시련을 극복한 셈이다. 이것이 여호와(또는 예수)가 마련해 준 피할 수 있는 길인가? (이런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자에게는 없다.)

 
어떤 주부가 콩을 가마솥에 넣고 볶고 있을 때, 콩들은 이유 불문 꼼짝 못하고 볶아지게 되어 있다. 콩들이 그 주부의 뜻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방법)은 없다. 크든 작든, 콩이 시련(볶아지기)을 극복하는 길은 그냥 볶아지는 것 뿐이다.
마찬 가지로, 여호와(또는 예수)로부터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최종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각종 시련으로 시달리다가 총착역은 죽음으로 통하는 길 뿐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느니, 시련을 줄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준다느니 따위는 신(神)의 이름을 빙자한 궤변이요 "잡놈의 행패"라고 욕을 쳐 먹어야 되는 현상일 뿐이다.
신(神)의 이름을 빙자해서 손쉽게 남의 재물을 갈취하여 살아가는 종교 사기꾼들이, 인간의 수고와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기꾼들이, 혹세무민하기 위하여 꾸며낸 궤변이 바이블(또는 예수교)이다. 그래 안 그래?


 
**참고; 위의 바이블 구절과 비교하며 다음 글을 음미해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예수)게로 오라. 내(예수)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예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 11;28~30)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시련으로 허덕이는 인간에게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멋진 말이다. 사기꾼의 말은 이렇게 멋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수고, 자기의 무거운 짐, 자기의 멍에를 가볍게 해 주거나 벗겨줄 자(신)는 없는 것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혹세무민을 위한 달콤한 미끼일 뿐이다. 여기에 한 번 말려든 사람은 모든 것을 빼앗긴 얼빠진 종자가 되고 만다.

좀 냉혹한 말이지만, 자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사람은 자신 뿐이다.
여호와(또는 예수) 아니라 그 할애비가 나타나더라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대신 걸머져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는 죽는다는 사실과 함께 우주의 진리(眞理)이다. 이 엄연한 진리를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고 시도하는 허욕이 바로 시련이요 불행이다.






[예수교 최고 최대 앞잡이 바울의 신앙 체험]
* 앞잡이--남에게 매여 그 밑에서 끄나풀 노릇을 하는 사람.  예, 바울, 베드로, 요한, 목사, 신부 등등.)


* "예수교는 체험의 종교이다."라는 말이 있다.


바울은 누구인가? 바울이 없었다면, 예수교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어쨌든, 신약(예수교 경전)의 27개 문서(또는 서신) 중 자그마치 13편이 바울에 의하여 씌어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을 정도이다. 
이는 예수교에서 바울이 차지하고 있는 무게감을 나타내고 있는 중대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신약은 그 배열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글(書信)이 먼저 씌어지고, 그 다음에 마가, 마태, 누가, 요한 등의 예수의 일대기가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바이블(예수교 경전)의 신약은 바울의 종교관이 먼저 태어나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아들 예수 얘기가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란 말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예수쟁이는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 급 목사(또는 신부)나 소위 신학자라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상, 예수교는 "예수교"라 하기보다는 "바울교"라고 해야 더욱 정확한 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바울은 4번에 걸쳐서 여러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강행한 자이며, 예수교를 대제국 로마의 심장부에 그 씨를 뿌린 자이기도 하다.
마침내, 예수교가 중동 지방의 조그만 구석에서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할 수 있는 밑 거름을 만든 자가 바울이었던 것이다.
바울은 전도 여행 중, 안디옥(Antioch)이라는 도시에서도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여기에서 예수쟁이(Christian)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한다.

어쨌든, 바울은 신약(新約=바이블)의 거의 절반을 기록하여 남긴 자이다.
이 사실이 바로 예수교가 무서운 사기꾼 집단 노릇을 하게 되는 요소이다.
(각설하고)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쟁이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잡아죽이기까지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던 그가 어느 날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한 후, 예수교 최대의 사도(使徒)가 되어 찬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마침내, 예수의 수 제자였던 베드로보다도 바울이 더 유명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바울 없는 예수교는 성립될 수가 없다."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 쯤에서 바울이 예수를 만나는 신앙 체험담을 들어보기로 하자. 바울이 예수를 만난 것은 예수가 죽은 후 부활하여 승천한 뒤의 일이다.
바울의 원래 이름 즉, 예수를 만나기 전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울은 원래 예수교를 핍박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울(바울)이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잡아죽이며 살기가 등등하던 때에, 사울이 그의 
일행들과 함께 다메섹(다마스커스)으로 여행을 가던 도중이었다고 한다.
이 때, 죽은 예수가 사울(바울) 앞에 나타났던 모양이다. 이것이 바로 사울(바울)의 신앙 체험담이다. 대박!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바이블은 예수교의 모든 것이다. 바이블 밖에서 떠들어지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예수교(여호와=예수)가 아니다. 아멩!


1) [(바울=사울)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예수) 가라사대, "나는 네(바울)가 핍박하는 예수라. .........."
(바울과)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도행전 9;5~7)


2) [내(바울)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예수)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예수)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사도행전 22;8~9)

* 위의 2개의 바이블 구절은 바울이 신앙 체험으로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을 바울이 직접 고백(설명)하는 모습이다.
둘 다 바울이 예수를 믿게 된 사건(장면)을 설명하는 신앙 간증이다. 둘다 같은 사건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바울(사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1)번에서는 예수의 말 소리만 듣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2)번에서는 빛은 보면서도 예수의 말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같은 장면 즉, 바울(사울)이 예수를 만나는 신앙 체험 장면의 상황이 정반대로 아주 다르게 간증되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이렇게 엉터리로 신앙 체험을 하고서 예수쟁이들을 잡아 죽일 정도로 예수교를 핍박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극단적인 예수의 앞잡이로 돌변했다 이거지? 헐! 아니, 대박!

"예수교는 체험의 종교이다."라고 말해진다. 그래서, 바울처럼 자기 신앙 체험을 발표(간증)하는 예수쟁이들도 많다.
그런데, 말이다. 바이블(신약)의 거의 절반을 써서 남겨 놓기도 하고, 
예수교를 세계적인 종교가 되도록 터전을 만들기도 하고, 
예수교인에게 "예수쟁이"라는 전문가적(?) 이름이 생겨나도록 활발히 전도 활동을 했던,
바울의 신앙 체험(또는 간증)이 이렇게 엉터리로 기록되어 있는 현상을 무엇이라 변명하겠는가?

(간증--자기의 신앙생활에서 얻은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고백하는 짓) 
 
거두절미하고, 예수교 최고 최대의 사도(예수의 앞잡이)로 불리는 바울은 없던 존재(허구=가짜)이다.
그렇다면, 없던 존재(허구=가짜)가 증거하는 예수 및 여호와는 무엇일까? 
0 * 1,000=0이며, 허구 * 1,000도 허구이다. 거짓말을 아무리 많이 모아놓더라도 결국은 모두가 거짓말일 뿐이다. 그래 안 그래?

예수교의 신 여호와 및 예수는 허구(가짜=거짓=0)이다. 더 긴 설명이 필요한가?






[체험(體驗)]


* 체험(體驗)--어떤 일을 실제로 보고 듣고 겪음,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은 여호와가 특별히 선택한 민족이라 한다. 좋겠다!
따라서, 히브리 족속은 여호와(예수교의 신)로부터 아주 커다란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히브리 족속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오늘 날의 예수쟁이들까지도 도매금으로 여호와(=예수)의 그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이라 한다. 대박!

그런데, 히브리 족속은 430년 동안 애굽(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해야만 했다.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택함을 받고 또 그 신의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는 족속이 왜 남의 나라에 얹혀 살면서 종살이를 해야 됐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것이 여호와(=예수)의 섭리라고 한단다. 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히브리 족속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해야 되는 이유(섭리)가 기록되어 있기는 하다.
그것(섭리)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여호와는 히브리 족속으로 하여금 가나안(팔레스타인) 지방에 정착해서 살도록 허락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가나안(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이미 자리잡고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모조리 때려 죽여 버려야 되는 일이었다.
원주민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려면 그들에게 그럴만한 죄가 있어야 되는데, 그 원주민들에게 아직은 때려 죽일만큼의 커다란 죄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600년 정도만 기다리고 있으면, 그 가나안(팔레스타인) 지방의 원주민들에게 죄악이 가득하게 된다는 게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예언이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계획과 지시에 따라 히브리 족속이 남의 나라(애굽)에 들어가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어쨌든, 이것이 여호와의 섭리이다. 여호와(또는 예수)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헐!

150년 정도를 길바닥에서 우여곡절 어영부영 보내고, 다시 애굽에 들어가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는 동안 그 기다려야 되는 600여 년이 흐르게 됐던 모양이다.
드디어, 가나안(팔레스타인) 지방의 원주민들의 죄악이 가득차게 되어 모조리 때려 죽여도 좋을 때가 된 것이다. 대박!
마침내, 종살이 하던 히브리 족속이 애굽을 탈출하여 여호와로부터 허락 받은 땅, 가나안(팔레스타인) 지방을 탈취하기 위하여 출발할 때 된 것이다.이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출애굽> 사건이다.

종살이(노예) 멍에를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강력했던 고대 이집트(애굽)의 종살이 멍에였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이신 여호와의 커다란 기적질이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아멩 할렐루야!


히브리 족속은 애굽에서 도망치기(탈출하기) 직전, 모세(여호와의 앞잡이)의 예언에 따라 10여 번에 걸처서 엄청나게 커다란 기적(재앙)들을 체험(體驗)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행군을 하기도 하고, 커다란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직접 건너 온 사람들이다.

출애굽 사건은 하루나 며칠이 아니라 자그마치 40년에 걸쳐서 사막벌판에서 벌어진 거대한 사건이었다. 매일 먹고 마시는 일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히브리 족속은 40년 동안 매일 하늘에서 쏟아지는 먹거리(만나와 메추라기)로 살아낸 사람들이다. 여호와의 기적질을 매일매일 체험(體驗)하면서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다.
그 뿐인가? 입고 있는 의복도 40년 동안 헤어지지 않는 기적질도 체험하고 있으며, 광야의 생활 속에서 여호와의 커다란 기적질들을 계속적으로 직접 체험(體驗)한다.

이렇게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를 직접 체험(體驗)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40년 동안 반복적으로 체험(體驗)한 사람이라면, 그가 학박사이건, 타종교 신봉자이건, 남녀노소, 상하 귀천을 불문하고, 그 자리에서 여호와 앞에 부복하여 쪼그라들게 되어 있다. 그래 안 그래?
인간으로 태어난 자 중에 감히 여호와에게 항명(抗命)할 그런 간덩이 부은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는 그 사람들(출애굽 사건에 직접 동참했던 히브리인들)이 한 두 번도 아니고 수 십 수 백번에 걸쳐서 계속적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믿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연속되고 있다.
바이블과 예수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인간이 악하고 교만해서 그런 것"이라고 장소와 때와 경우를 가리지 않고 말해지고 있다.
되는 현상일까? 맞는 말이라고 여겨지는가? 이런 것을 <궤변> <모순> <허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여기에서 히브리인들이 여호와를 거역하는 장면을 한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출애굽 사건에 동참한 히브리 사람은 장정만 헤아려도 60만이었다고 한다.
젊은 장정이면 부모가 있을 것이고, 늙은 장정이면 자식이 있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말하는 장정이란 노략질 전투에 동원될 수 있는 남자를 말한다.
따라서, 장정 한 사람의 가족이 5인이라면 히브리 인구는 적어도 300만은 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또, 출애굽에는 가축들도 모조리 끌고 나왔다 했다. 그렇다면, 사람과 동물을 합쳐서 생면체가 적어도1,000만은 되지 않았을까?
이 1,000만이라는 생명체들을 염두에 두고서 다음 얘기를 보기로 하자..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는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磐石)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목전(目前)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

(출애굽기 17 ; 1~7)


(1) 히브리 족속은 모세(여호와)를 원망하면서 "우리를 공연히 애굽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목말라 죽일 작정이냐?" 하고 다투었다고 한다.

(2) 이에 모세가 여호와의 명에 따라 지팡이로 반석(넓고 평평한 큰 바위)을 쳤더니 거기에서 물이 나와 마셨다고 한다.

(3) 중동 지방에는 와디(wadi=wady)라는 강들이 있다. 우기(雨期)에만 잠시 물이 흐르다가 이내 말라 버리는 강이다. 사막 벌판이어서 물은 곧 모래 속으로 스며든다.

(4) 60만, 300만 또는, 1,000만에 달하는 생명체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솟아 나려면 어떤 상태의 물줄기여야 할까?

(5) 서울 시민이 1,000만 내외로 알고 있다. 수 십 층 빌딩 숲에 살아도 그 지역을 벗어나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천막 생활을 하는 생명의 1,000만 집단의 지역 범위는 어느 만할까?

(6) 소설(삼국지 연의)이지만, 조조의 100만 대군이 진을 쳤던니 그 범위가 100여 리에 달했다고 했다.
(이것은 팔팔 날고 기는 청년 만의 간편한 무장 집단이다.)

(7) 와디(wadi) 뿐인 사막 벌판에서 물이 어떻게 솟아올라와야 그 많은 생명체들이 마실 수 있을까?
물이 단번에 직경 100m의 물기둥이 1,000m 높이로 솟아오르면 될까? 그래도 저 끝까지 흐르기 전에 다 땅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또 물이 솟아오른 주위의 생명체들은 모두 익사(溺死)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8)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물 기적질이 사실이라면, 그 상황으로 보아 그 기적으로 인하여 발생한 부수적인 기적질 장면이 더 요란했을 것이며, 그 기록 또한 요란할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 속의 기적 이야기들은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보다 더 심심하다. 왜일까?


그런데 말이다, 또,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엄청나고 많은 체험(體험)을 해 봤다는 히브리 족속과 예수쟁이들은 수 천년을 내려 오면서 여호와(또는 예수)를 믿지 못해서 전전긍긍한다. 되는 말(현상) 같은가? 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든지, 눈 감고 아웅을 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글리 길어져서 이만 줄인다.
과학이다 논리다 뭐다를 다 그만 두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황들이다. 조용히 생각해 보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은 허구(虛構=거짓, 가짜)일 뿐이다. 따라서, 허구가 설명하는 여호와(예수) 또한 허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호와는 사랑이 많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된다는 말들을 꿀을 발라서 떠들어 봐도 역시 허구에서 나온 허구일 뿐이다.

허구(=0)를 1,000만 번 보태거나 곱해봐도 여전히 허구(=0)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한 번 허구는 영원한 허구일 뿐이다.


* "예수교는 체험(體驗)의 종교이다."
  그래서, 위에서 여러 가지로 예수교의 체험을 따져 보았다. 예수교 최고 최대의 앞잡이 바울의 체험도 따져 봤고.
  예수교의 체험은 전지전능한 신이 내려 주는 체험일 것이다. 따라서, 엄청나게 정확하고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체험일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 속에서 보여주는 체험이나, 예수교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체험이나, 오늘 날의 예수쟁이들이 보여주는 체험이나,
  어느 것 한 가지도 뻥튀기 과자보다도 더 푸석거리며 부서지는 꼴 이상도 없고 이하도 없는 가짜 뿐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바이블, 여호와, 예수, 목사, 신부 그리고 일반 예수쟁이 등)은 한 가지도 빠짐 없이 허구(거짓=가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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