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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의 유대땅
글쓴이 : 적 그리스도  (155.♡.33.235) 날짜 : 2006-07-13 (목) 02:30 조회 :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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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가 생존했다는 시기의 이스라엘은 비록 로마의 지배를 받고는 있었지만 평화로운 듯 보인다. 이러한 복음서 속의 묘사는 과연 역사적인 사실과 부합되는가?

 

기원을 전후로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무장봉기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혼돈의 시기였다. 당시 식민통치를 했던 로마와 로마의 괴뢰정권에 대해 반기를 든 유대인들의 무장투쟁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어서 그가 사망한 후에도 100여년 동안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당시 유대역사를 대략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BC 141년에는 하스모니아(Hasmoneans)왕가가 통치했으나, B.C 63년에는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정복당하고 유다는 정복되었다. 비슷한 시기인 BC 67~63년에는 하스모니아 왕가의 내분이 일어난다. BC 49년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의 군대에게 팔레스타인 전체가 함락되었으며 예루살렘의 스룹바벨 성전은 파괴되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관습을 보존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최종적인 권위는 로마법에 따라 수행되었으며 로마군대에 의해 통제되는 식민지 정책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로마의 영토는 너무나 광대하였으며 로마 자신의 사건들로 골치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를 통치할 괴뢰정부를 세우게 된다. 괴뢰정부의 첫번째 왕은 BC 63년에 팔레스타인의 왕좌를 차지한 에돔인(이두매 지역사람)이었던 안티파터(Antipater)였다. 그가 BC 37년에 죽자 그의 아들 헤롯대왕(Herodes)이 그 뒤를 이었는데 그는 BC 4년까지 통치했다. 이즈음, 유대인들의 무장투쟁은 끊임없이 계속 되었는데, 로마나 유대지배계급은 이 독립운동의 주체들을 '강도'(lestai)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강도들은 단순히 폭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매국노에 항거하려는 목적이 주된 것이었다. 이들을 지칭했던 또 다른 용어는 '열심당' (Zealots)이다.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8권 8절에 의하면 유대인의 무장투쟁은 AD 70년 성전이 불에 타서 잿더미로 변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특히,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선교 활동의 중심지라고 말할 수 있는 갈릴리는 유대인들의 무장투쟁 독립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BC 47년 히스기야(Ezekias)가 일으킨 무장투쟁, BC 40~37년경에 일어난 안티고누스(Antigonus)의 무장투쟁에 이어서, BC 4년경 헤롯 대왕의 임종을 앞두고 일어난 성전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왕자들의 권력투쟁, 히스기야의 아들 유다가 갈릴리 세포리스 근교의 무리들을 규합해서 궁궐을 습격하고 병기고를 약탈한 무장투쟁이 있었다.

헤롯대왕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로마로 승인을 받기 위하여 가자마자 유대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으며 자칭 왕이라는 자들이 여럿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스라엘 전역이 무장혁명단체로 들끓게 되는데, 헤롯의 노예였던 시몬이라는 자가 무리들을 규합해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하고 다니기도 했고, 비슷한 시기에 아뜨롱게스라는 사람도 스스로 왕을 자칭하고 다녔다. 반란이 들끓게 되자 BC 4년 로마의 바루스(Varus)는 세포리스를 공격했고, 주민을 노예로 사로잡고 도시를 불태웠다. 바루스는 그의 다른 군대 일부를 떼어 지방으로 파견해서 유대 반란자들을 색출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2000여 명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무장투쟁은 끊이질 않게 되는데, AD 6년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한 구레뇨가 호구조사를 하자 가말라(Gamala)에서 골란 출신 유다(Judah)가 바리새인 째독(Zaddok)과 함께 무장투쟁을 일으켰다. 헤롯 대왕에게 유대와 사마리아 의 통치권을 물려받은 아들 아켈라오의 통치 역시 혼란과 피 바람으로 얼룩졌다. 이혼녀와 결혼한 아켈라오에 대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반발을 했는데, 아켈라오는 두 번에 걸쳐서 대제사장을 해임시키고 그의 군대는 유월절에 3천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10여년에 걸친 그의 통치기간 중 결국 유대인들의 반발이 끊이질 않자 AD 6년 로마는 아켈라오를 고울 지방으로 유배시킨 뒤, 코포니우스 출신의 총독을 임명하게 된다. 한편, 갈릴리 유다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의 기록은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들들이 대를 이어 줄기찬 투쟁을 벌였다. 그의 아들 둘이 십자가형에 처형되었고, 한 사람은 엘르아살(Eleazar)로서 AD 68년 유대혁명이 시작되자 스스로 메시아라고 자칭했으며, 자객(sicarii)들을 이끌고 마사다 전투를 이끌었다고 한다.

 

헤롯대왕이 사망한 BC 4년 무렵에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의 어린 시절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혼돈은 결코 무관할 수가 없다. 복음서 속에는 예수의 청년시절이 등장하지 않는데, 30세 무렵에 예수가 다시 사역을 시작한 그 때에도 갈릴리뿐만 아니라 유대 전역, 심지어 예루살렘에서도 무장투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 의하면 빌라도가 예루살렘으로 황제의 상을 몰래 갖고 들어오자 시골에서 농민들이 몰려들었으며, 빌라도가 성전세를 수로관 건립에 유용하자 격분한 민중들이 빌라도를 포위하자 그는 무자비한 강제 진압을 감행했다.

 

그 외에도 헤롯 안디바가 본 부인을 내쫓고 형제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재혼을 하자 유대인들이 크게 반발을 했으며, 자기 딸이 강제 이혼 당한 것에 분노한 아레스터 왕은 AD 36년에 베뢰아를 침공하여 전투가 벌어진다. 예수는 이때쯤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고 하는데 유대인들의 무장투쟁은 끊임없이 일어나 이스라엘은 망국의 운명으로 내달리게 된다. 유대인 사이에서도 맞서는 파벌들이 생겼으며, 대제사장이 잇달아 바뀌면서 성전은 싸움과 살인으로 얼룩졌다. 벨릭스, 베스도, 알비누스, 플로루스 등 총독들의 학정은 갈수록 그 악랄함을 더했다.

 

AD 44년 무렵 메시아를 자칭하는 테우다스(Theudas)는 가정과 재산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며 사막에서 무리들을 모아 요단강변으로 몰려가 서쪽 예루살렘을 진군하려고 했지만, 로마 총독 구스피우스 파두스는 기병대로 테우다스의 목을 베고 그의 부하들을 살육한다. AD 50년 유월절 행사가 진행되던 중 순례자들과 로마 병사의 사소한 충돌로 인해 로마군 보병군단이 진군해 들어가 2만 명이 학살되었다. 52년에는 20년 간 산에서 투쟁경력을 쌓은 엘리자 벤 데이나이오스(Eleazaur ben Deinaios)가 혁명을 일으켰으나, 총독 쿠마누스가 관련자들을 체포하여 십자가형에 처했다. 그러나 혁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자 새로운 총독 펠릭스가 완전히 진압하고 엘리자를 체포하여 로마로 압송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펠릭스가 십자가형으로 처형한 강도(무장 독립군)들의 수효는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펠릭스에 이어 부임한 총독 페스투스(Festus)는 닥치는 대로 유대인의 무장투쟁단들을 살해했으나, 로마 군이 몇 차례 걸쳐 유대에 패배한 후 네로 황제는 로마의 최고 명장 베스파시안(Vespasian)을 파견한다. 6만 5천의 최신예 무기를 갖춘 로마 군이 예루살렘을 진격해 들어갔다. 베스파시안은 네로가 죽자 아들 티투스에게 과업을 승계해 AD 70년 예루살렘 함락시키고 성전을 불태웠다. AD 73년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의 항전 이후에도 유대인의 무장독립군은 메시아 신앙으로 저항을 계속한다. AD 132년에 바르 코흐바(Bar Kochva: 별의 아들)가 20만 군대를 조직하여 유대 독립국가를 수립했는데, '시몬, 이스라엘의 왕자'라고 새겨진 자체적인 화폐까지 생산할 정도로 그 규모가 대단했으며, 당시 유대인들은 코흐바를 메시아로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국가는 3년 천하를 이루었다. 로마는 1개 군단이 전멸을 당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야 코흐바를 독립운동을 진압할 수 있었다. 증오심에 사로잡힌 로마군은 1천여 마을을 초토화시켰으며 50만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 이후 하드리안 황제는 로마의 지도에서 아예 유대라는 땅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게 된다. 예루살렘은 '아일리아 카피톨리나'(Aeliu Capitolina)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바뀌면서 유대인의 접근이 금지되었다.   

 

현재 우리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예수의 일대기를 담은 복음서들, 그리고 예수가 죽은 후의 일을 기록한 사도행전 같은 신약을 읽는다면 예수와 그의 사도들의 생애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혼돈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눈치챌 수 없을 것이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당시 유대인들의 로마의 식민지배와 괴뢰정권인 헤롯일가에 대해 반발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당시 유대사회는 비교적 평화로운 듯이 보이는 것이다. 복음서와 사도행전같은 신약성경의 독자들은 예수 이전에도 예수 당대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해방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더더욱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복음서에서는 이러한 당시의 긴박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다!

 

필자가 한가지 감을 잡은 것이 있다면 복음서는 헬라화된 유대인들에 의해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초대교회는 로마화된 유대인들에게 크게 유행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마침내 국교로 삼은 것 역시 로마황제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대역사를 파악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에게는 매국노와 다를 바 없었다. 요세푸스의 저서에서 그는 유대인들의 무장독립투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모두 강도와 폭도로 지칭한다. 마찬가지로, 복음서와 신약을 기록한 헬라화된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의 무장독립투쟁을 아예 언급하고 싶어하지 안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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