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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상황과 무관한 복음서
글쓴이 : 적 그리스도  (155.♡.33.235) 날짜 : 2006-07-13 (목) 02:22 조회 : 7095

▶ 시대상황과 무관한 복음서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함부르크 대학의 동양언어 교수로 재직했던 라이마루스 (H.S. Raimarus)는 생전에 훗날 역사적 예수 연구에 기념비적인 글을 남긴다. 그 글은 그가 죽은 이후에 레씽(G.E.Lessing)에 의해서 '라이마루스:미완성된 유고'(Raimarus: Fragments 1774-1778)라는 제목으로 출판 되었다. 라이마루스의 주장에 의하면, 실제 예수의 가르침은 후대에 만들어진 복음서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가 유대 혁명가로써 심판의 날이 임박했다고 믿고 선포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보았으며, 그의 실패 후 제자들은 그의 시신을 숨기고 이후에 예수의 부활과 재림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시작을 일종의 '사기극'으로 보는 그의 견해는 복음주의자들의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했지만, 당시 혼돈 속의 유대사회를 배경으로 역사적 예수를 탐구한 점은, 훗날 예수연구의 학문적 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1)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

4개의 복음서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이 예수의 출생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두 이야기는 예수의 탄생 시기에 대해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먼저 마태복음서는 예수가 헤롯 대왕의 통치시절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면, 누가복음 2장 2절에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인구조사령을 내릴 때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때 시리아의 총독은 구레뇨(Quirinius)였다고 한다. 문제는 헤롯 대왕은 BC 4년에 사망한 사람이고,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한 것은 BC 6년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태어난 무렵에 유아학살을 자행했다고 하는 헤롯왕은 바로 헤롯 대왕(헤로데가 일반적 명칭임)이다.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마태복음 2장 22절]

 

위 구절에서  알수 있듯이 유아학살을 자행한 왕은 헤롯 아켈라오(=헤롯 아르켈라우스)의 아버지인 헤롯 대왕이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칼비누스(Calvinus)와 폴리오(Pollio)가 지방 총독(proconsul)이었을 때 로마에 의해 왕으로 선포되었다. 이때가 BC 40년이었는데 그 후로 37년을 통치했다. 또한 헤롯이 죽을 때에 월식이 있었다고 요세푸스는 말한다. 천문학적인 계산에 의하면 월식은 BC 5년  3월 23일, 9월 15일, BC 4 년 3월 12일, BC 1 년 1월 9일에 유대 땅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요세푸스는 아켈라오가 통치 제10년, 즉 A.D. 6년에 폐위되었다고 기록했다.  이것은 헤롯의 사망 연대가 BC 4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헤롯은 죽기 얼마 전에 유월절을 지켰다고 하는데 BC 4년의 유월절은 4월11일에 시작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BC 4년 4월초가 될 것이다.)

 

반면에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17~18권에 따르면, 헤롯 아켈라오가 실각하여 물러간 뒤 유대 지방을 편입한 시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한 구레뇨는 기원 후 6년에 유대의 대리 통치자인 코포니우스(Coponius)와 함께 인구조사를 했다.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재임했던 기간은 AD 6~9년이다. 따라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시기에는 최소한 10년간의 차이가 있다.(BC 4년~AD 6년). 엄밀히 말해서 BC 4년과 AD 6년의 년도를 따지는 것조차 불필요하다. 구레뇨는 헤롯대왕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10년간의 통치도중 실각한 뒤에나 시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내용상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호구조사는 전혀 언급 되지 않는다! 반면에.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유아학살은 전혀 언급 되지 않는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태어난 뒤, 헤롯 대왕의 유아학살에 대해 천사에게 경고 받고 이집트로 피신한다. 헤롯대왕이 죽자 예수의 부모는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이주한다. 반면에.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부모는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으며, 인구 조사를 위해 도착한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낳는다. 조사가 끝난후 예수가족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온다. 예수가족의 이주경로(누가복음: 나사렛-베들레헴-나사렛 / 마태복음:베들레헴-이집트-나사렛)도 틀리고, 이주한 이유도 틀리다!( 누가복음: 인구조사 때문 / 마태복음:유아학살 때문).

 

(덧붙여서 마태복음에서 헤롯이 끔찍한 유아학살을 저릴렀다는 무시무시한 그때, 누가복음은 예수가 태어난지 8일후의 할례에 이어서 33일의 정결례까지 마치고 태연스럽게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고 말한다. 성전에서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이것은 레위기12:4의 33일의 정결례가 지나간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마태복음에서 헤롯이 유아학살을 저질렀다는 그때 말이다....)  

 

더더욱 웃긴 것은 누가복음 안에서도 엄청난 역사적 오류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복음 1장 5~27절에 따르면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때에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6개월 간격으로 임신한 뒤, 이어지는 누가복음2장에서는 구레뇨가 호구조사를 할 때 예수가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 1장에 언급된 헤롯은 분명히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다.  즉, 두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는 때를 가르켜 누가복음 1장5절에서는 헤로데가 유대의 왕이었을 때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구절에서는 헤로데를 분명히 왕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다른 지배자는 아무도 언급되지 않는다. 반면에 예수가 성인으로 등장하게 되는 누가복음3장 1절에 따르면 유대의 통치자는 빌라도였으며, 나머지 영토는 헤롯의 아들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에게 분할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누가복음1장에서 헤로데가 통치했던 유대아는 3장에서 빌라도에게 넘어갔고, 나머지 영토를 다스리게 되는 헤롯의 아들들 에게는 분봉왕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공동번역판에는 영주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따라서 누가복음 1장5절의 헤로데는 기원전 4년에 사망한 헤롯 대왕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셈인데, 그렇다면 마리아는 헤롯대왕의 통치시기에 임신해서 구레뇨가 호구조사를 할 때 예수를 낳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처구니 없게도 누가복음은 마리아가 최소한 10년동안이나 임신했다는 역사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보수적인 기독교계 학자들은 구레뇨가 두 번이나 시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했거나, 또는 로마가 정치와 군사를 따로 담당하는 두 명의 총독을 임명했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라는 말을 주목하기 바란다.) 이는 역사적인 사료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반박에 불과하다. 초대교회의 변증가인 터툴리안에 의하면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Sentius Saturninus)가 BC 9~6년까지, 쿠인틸루스 바루스(Quintilus Varus)가 BC 7년~ AD 4년까지 시리아의 총독이었다고 한다. 이 두 사람 사이엔 1년이 겹치기는 하지만 그 이전엔 구레뇨가 총독을 지냈다는 기록이 없다. 또한 헤롯 대왕이 살아 있을 때 시리아 총독은 유대땅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다시 말해, 헤롯대왕의 아들 아켈라오가 실각하고 난 뒤에나 시리아 총독이 유대땅을 접수하게 된다. 게다가 위에서 지적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상치되는 점은 무엇으로 설명을 하겠는가? 덧붙여서 헤롯대왕의 유아학살사건 또한 역사적으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2) 바리새인은 위선자인가?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유대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세력들이었다. 복음서속에서 예수는 여러번에 걸쳐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새끼들이라고 욕하며 그들을 위선자라고 칭했다. 그러나 정작 예수의 질타를 받아야 할 집단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사두개파였다. 당시 동족들의 분노를 받았던 것은 사두개파였고, 바리새인들은 로마에 저항을 했던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지식계층이었다.

 

사두개(Sudducees)라는 명칭은 히브리어 사딕(Saddig : 의로운)에서 비롯되었거나, 혹은 사두개파가 성전 제사장직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솔로몬의 제사장이었던 사독(Zadok)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사두개인들은 숫자가 적었지만 부유한 지주계급이었고 당시 거의 모든 제사장들이 사두개인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로마의 식민통치에 협조했던 무리로 이 때문에 유대동족들의 분노를 샀다. 이들은 왕정 시대와 유배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안티오쿠스 4세와 하스모니안 왕가시대에는 세력이 약화되었다. 이들은 매우 엄격한 율법주의자들이었으며 성향은 보수적이었는데, 부활이나 영혼불멸, 천사론에 대해서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들은 바리새파들의 가르침에 끼친 너무나 많은 페르시아의 영향과 앗시리아의 영향을 보았으며, 바리새파는 유대 전통의 반역자들이라고 느꼈다. 벨하우젠(Wellhausen)에 따르면 사두개파는 종교적인 집단이라기보다는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성직자 계급 및 집권귀족계층과 밀착되어 있는 정당에 더 가까웠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사두개인들은 낡은 성직제도와 지주 귀족층을 대표하는 보수종교단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극히 현실 타협적이어서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국가에 충성을 맹세했다. 당시 사두개파는 유대인들의 무장독립항쟁을 막는데 힘을 쏟아붓게 되고, 이것이 열심당과 민중들의 증오의 표적이 되었다. 결국 AD 70년의 유대전쟁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이 전쟁에서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동족들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사두개파는 괴멸되었고 그 이후로는 세력을 얻지 못했다.

 

반면에 바리새인(Pharisees)들은 유대교에 많은 개혁을 도입하였으며 복음서들에 있는 묘사와는 달리 소극적이긴 하였지만 로마에 강하게 저항하였던 진보적인 무리이다.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이 낱말의 기원을 '분리되어 있는 사람'(파루쉬parush, 페리쉬perish)의 뜻인 히브리어 파라쉬(parash , 아람어 페라쉬perash)로 파악하고 있으나, 다른 해석으로는 히브리어 파루쉬는 '거룩한, 신성한'을 뜻하는 카도쉬(qadosh)와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설명에 의하면 헬라식 이름이 '바사인'을 뜻하는 아람어 프리쉬(perishi')의 헬라어 형태라는 것이다. 이는 바리새파의 반대자인 사두개파가 바리새인이 외국의 교리를 유대교에 도입하는것에 대해 붙인 별명이었다는 설이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영혼불멸과 육신의 부활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이는 사두개파의 사상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22장 23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장으로는 히브리어 파라쉬의 뜻 중에는 '가르치다, 쪼개다, 분할하다'의 뜻을 살려 '해석자'라는 주장도 있으나 바리새라는 이름이 수동형이라는 점에서 이 이론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바리새파는 마카비혁명에서 유래하고 있다. 안티오코스4세의 유대교 탄압에 반발해서 경건한 유대인들(하시딤)이 혁명에 동참했는데,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하스모니안의 지도자들이 예루살렘 제의를 회복한 이후에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직을 겸임하고 그것을 세습하게 되자, 이에 반대해서 그들과 결별하게 되었다.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자면 예수가 활동했다는 시기에는 6000여명의 바리새파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보수적 집단이었던 반면에, 바리새인 역시 율법에 대해서 보수적이기는 했으나 새로운 사상에 대한 개방성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요세푸스는 바리새인을 가르켜 '합리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핑켈슈타인(Finkelstein)은 바리새 집단을 가르켜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당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종교집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대교 에서 지배권을 장악하려고 분투했던 권력단체이기도 했다. 다만 사두개인은 옛 방식 과 현상 즉 구질서를 유지하려는 관료주의에 귀착된 반면, 바리새인은 기원전 2세기부터 줄기차게 유대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자유주의자요, 또한 진보주의자였다. 바리새인의 대부분은 중산층의 수공예인들과 직공들 가문 출신이었는데 그들은 농부들 집단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바리새파는 어느 집단보다 민중들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미쳤는데, 기원전 2세기 이후부터 유대 사회의 민중들은 이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괴뢰정권이면서 동시에 율법을 무시하고 불륜과 패륜을 일삼는 헤롯일가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사두개파처럼 현실타협적인 정치관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여러 번에 걸친 유대인의 반란도 바리새인들에 의해 지휘되었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사두개파들이 로마의 식민통치에 순응했던 것과는 다르게, 유대인의 무장독립투쟁은 대부분 영혼불멸과 부활의 사상을 외치고 다녔다. 예를 들면, 유다와 함께 무장투쟁을 일으킨 혁명동지 바리새인 째독은 제 4의 철학(The Fourth of Philosophy)을 설파하고 다녔는데,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 18장 23절에서 '제 4의 철학'에 대해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바리새인의 사상과 같았다."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그들이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로마에 대한 항거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유대사회의 역사적 정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복음서를 읽다 보면, 독자들은 바리새인들이 당시 유대사회의 집권층으로 여겨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끔 만든다. 물론, 바리새인들이 당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유대사회의 주요 집권층은 사두개파였다. 사두개파들이 성전 예배를 강조한 반면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개인적인 수행을 강조했다. 이는 헬라사상이 침투하면서 유대인이 민족성을 잃은 것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으로 인한 반작용 일수 있다. 따라서 율법을 너무도 소중하게 여기는 바리새인들의 행태에 대해 복음서에서 예수가 비판을 한 것은 이해되는 면도 있다. 그러나 사두개파에 대한 비판보다, 바리새파에 대한 비판이 너무도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복음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만들 정도다.

 

필자가 성경에서 바리새와 사두개라는 단어로 검색을 했다. 복음서를 기준으로, 바리새라는 단어로 압도적인 숫자의 수많은 구절들(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이 등장했는데, 반면에 사두개라는 단어로 검색된 구절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복음서의 저자는 로마에 매국행위를 했던 사두개파는 별로 부각시키지 않고, 바리새인들에게만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복음서에서는 바리새인의 율법주의를 그토록 비판하면서도, 정작 예수를 모함하기 위해 바리새인은 로마에 납부하는 세금문제로 질문을 해온다. 사두개파에 대한 복음서의 비판은 그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다는 정도뿐이다. 역사적인 정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복음서를 그냥 읽는다면, 바리새인이 당시 유대사회의 매국노이자 제사장 그리고 권력자로 여겨지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복음서가 이렇게 기록된 이유에 대해 필자는 2가지 추측을 해본다. 첫번째로 추측하기로는 복음서의 저자가 당시 유대사회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음서는 이스라엘땅이 아닌 곳에서 헬라파 유대인이 기록했기 때문에, 당시 유대사회의 정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 추측하기로는, 복음서를 기록한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 헬라화 되어, 유대율법을 중시하는 바리새인에 대한 혐오감이 작용했을수 있다. 이 때문에 매국을 일삼았던 사두개파는 별로 거들떠 보지도 않고, 바리새인들만 주로 공격하는 방식으로 복음서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던 간에 수 천년간 기독교인들에게 위선자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바리새인의 이미지는 이제 버려야할 때가 온 것 같다. 매국을 일삼았던 사두개파는 어디로 가고, 사두개파가 들어야 할 욕까지 바리새인이 한꺼번에 듣고 있다. 이는 복음서는 역사가 아닌 허구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저자의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3) 예수재판의 허구성

예수가 체포된 후에 벌어지는 재판과정 역시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첫 번째로, 사형선고를 내릴 권한을 갖고 있던 산헤드린 공의회가 어째서 예수를 로마총독에게 넘겨주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마가복음 14~15장,누가복음 22장에 의하면 체포된 예수는 먼저 산헤드린(Sanhedrin)의 대제사장들에게 심문받은 다음 빌라도에게 보내 졌다고 한다. 예수를 만난 빌라도는 그가 무죄임을 인정하고 풀어주려 했으나 성난 유대인들이 예수를 처형하라고 부르짖으며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점은 바로 유대인들은 굳이 빌라도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산헤드린의 공의회에 따라 돌로 쳐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 학자들의 반론은 산헤드린 공의회가 대부분의 형벌을 내릴 수 있었으나 사형 판결만큼은 내릴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산헤드린 공의회의 역할이 축소된 것은 헤롯 아켈라오가 해임된 기원후 61년에 유대인들 스스로가 야브네 법정을 만들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일화들은 기독교 학자들의 반박을 한 순간에 무색하게 한다. 예를 들면, 예수가 사망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예수의 추종자 중 _?xml_: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한명인 스테판은 산헤드린 공의회에 끌려가 사형을 선고 받는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사도행전 6장 12절]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 [사도행전 7장 58절]

 

이와 같이 스테판은 산헤드린 공의회에 끌려와서 유대인의 처형 방식에 따라 돌로 쳐죽임을 당하게 된다. 또, 예수가 살아있을 때인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스테판에게 사형을 내릴 만큼 권한이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는 어째서 예수를 처형하지 않았을까? 스테판이 위험인물이라면 예수는 그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 아닌가? 어째서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유대인들이 빌라도 앞에 몰려가서 예수를 사형시켜달라고 부르짖는 것일까? 이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일수 밖에 없다. (또는 복음서의 저자가 로마 제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날조를 했을 수가 있다)

 

두 번째로 가야파의 집에서 행해졌다는 심문과정의 의구점이다.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가 한밤중에 취조를 위해 대제사장 가야파(Caiaphas)의 집으로 붙들려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예수를 취조하던 율법학자들과 제사장들이 그의 말을 듣고 격분하여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렸다. 이 이야기에는 유대의 율법을 무시했다는 문제들이 있다. 우선, 산헤드린의 지정된 회의소(Hall of Hewn Stone)에서 모이지 않으면 그들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었다. 그리고 산헤드린은 밤에는 만날 수 없다는 특별한 규정이 있었는데 정의는 한 낮의 빛(light of day)에서 수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산헤드린의 원로들은 피고를 때리거나 그에게 침을 뱉었다는 것은 복음서의 저자가 유대 율법에 대해 놀랄 만큼 무지함을 보여준다. 고문에 의한 자백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율법이다.

 

세 번째로 복음서에 묘사된 빌라도의 모습은 역사 속에 기록된 빌라도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알고 어떻게든 그를 살려주려고 노력하지만 분노한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기세를 보이자 두려움에 떨며 할수없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는 나약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유대인 전쟁과 유대인 연대기에 기록에 의하면 폰티우스 빌라도(Pontius Pilate) 두 번에 걸친 유대인 무장투쟁을 대학살로 응징했던 무자비한 폭군이었다. 빌라도의 포악성은 아그립빠 1세까지도 그의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 정도였다고 하며, 필로(Philo)는 가이우스 시저(Gaius Caesar)에게 빌라도는 굽힐 줄 모르는 잔인한 괴물이라고 보고했을 정도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기원후 36년에 사마리아인 대학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시리아의 지방 총독이었던 비텔리우스(Vitellius)에 기소되어 로마로 소환되었으나 끝내 자살을 했다고 한다.

 

빌라도는 공공연하게 선동을 인정하는 유대인을 향해서 망설임없이 처형을 실시했던 통치자였다. 복음서에는 빌라도가 예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 라고 묻자 예수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빌라도는 예수를 선동죄로 즉시 처형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속의 빌라도는 예수를 어떻게든 살려주려고 유대인의 유월절 관례까지 들먹이는데 유대인의 관례 중 유월절에 죄수를 풀어주는 관례는 없었다.

 

정말로 이상스러운 점은 복음서들에서 로마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예수를 음해 한것도 유대인이고,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라고 부르짖는 것도 유대인들이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라고 말하자 유대인들이 목소리를 모아 빌라도에게 대답한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마태복음 27장 25절]

 

이 구절은 이후의 역사에서 벌어지게 되는 이스라엘 멸망과 유대인 탄압의 당위성을 실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앞서서 살펴보았듯이 복음서들에서는 로마 제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4) 기타 의문점

당시의 유대관습은 남자의 결혼이 할례와 마찬가지로 의무적이었고 독신은 비난 받았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어떻게든 예수를 해코지 하려는 무리들이 등장하는데, 어느 누구도 예수의 독신을 트집잡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의문점일수 밖에 없다. 유대교의 미슈나 율법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교사가 될 수 없다라고 상당히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예수가 독신이었다면, 예수를 해코지하려는 자들이 그는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게자 베머스'(Geza Vermes) 박사도 이점을 지적하면서, 예수의 결혼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예수가 그 시대의 관습과 문화에 적응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마가복음 15장 43절, 마태복음 27장 58절등에는 아리마데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요구하여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당시 십자가 처형으로 죽은 시체의 반출은 금기 시 되었다. 보통 십자가 형을 받은 사람은 까마귀 밥으로 그냥 놔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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