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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스포라
글쓴이 : 적 그리스도  (155.♡.33.235) 날짜 : 2006-07-08 (토) 07:40 조회 : 5938

▶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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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Diaspora)란 단어는 팔레스타인 외역(外域)에 살면서 유대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던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산(離散) 유대인','이산의 땅'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이는 헬라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분산(分散),이산(離散)을 뜻한다.  역사적인 기록에서 이 단어는 헬레니즘 문화시대와 초기 기독교 시대를 통해 그리스 근역(近域)과 로마 세계에서 유대인의 이산을 가리키고 있다. 초대 기독교를 연구할 때,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연구해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그것은 유대교가 기독교로 변모해 가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가 유대교의 구약과 유대적인 관습을 지켰으면서도, 기독교와 유대교는 엄연히 차이가 난다. 기독교에는 유대인들의 헤브라이즘적인 요소에, 그리스적인 헬레니즘적인 요소가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바깥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BC 8세기 후반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팔레스타인의 북부를 차지하고 있던 이스라엘 왕국이 BC 734∼BC 721년의 아시리아 침입으로 멸망하여 아시리아 영토에 편입되었을 때 많은 유대인이 고향을 떠났다. 또 BC 598∼BC 587년 사이의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남쪽의 유대 왕국이 멸망하자 비슷한 이주현상이 일어났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개척자 같은 정신으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많은 무리가 다른 지역, 특히 이집트로 이주하였다. 그 후, BC 4세기 초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자, 근동에서는 그리스인의 통치에 의해서 파급된 그리스 문화에 실려 문화적인 혁신을 겪게 되었다. 또 교역과 상업이 급속하게 발달한데다,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이 이민을 장려하는 정책을 취했던 탓으로 유대인의 이산을 촉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매우 능동적으로 반응하여, BC 1세기 말엽에는 시리아, 이집트,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이탈리아에 많은 유대인 공동체가 나타났다.

 

신약성경의 사도행전 2장 9∼11절에도 바르티아, 메대, 엘람, 메소포타미아, 유다,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프리기아, 밤필리아, 이집트, 키레네,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언급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중심지는 로마 제국의 3대도시인 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였다. 안티오키아에 유대인들이 정착한 것은 BC 150년 이후였으며, 로마인은 그보다 더 늦었는데, 규모가 크고 부유하였으며 영향력이 강하기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신약시대의 디아스포라 학자 필로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에만도 100만 가량 있었던 것 같다.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보다 그리스 문화에 대해 훨씬 개방적이어서 헤브라이어와 아람어를 사용하던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헬레니즘 문화권의 도시들에서 주로 수공업과 무역에 종사하던 그들은 본토 유대인들보다 높은 수입을 올렸으며, 그들이 행하는 무역의 중요성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같은 곳에서는 원주민보다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로마의 시민권이 제국의 여러 곳으로 넓혀질 때, 사도 바울처럼 로마의 시민권을 얻은 사람도 많았다.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그리스 문화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리스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적 헬레니즘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 그곳의 유대인들은 '70인역(譯)'이라고 불리는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역본을 출간하여 초대기독교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그들 중에서 많은 학자, 저술가가 나왔는데 필로가 가장 유명하였다. 또한 헬레니즘화된 유대인들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앙을 흡수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끔 디오니소스, 또는 제우스와 같은 신으로도 취급되고 있다........(중략).....한편 BC 2세기 말에는 소(小)아시아의 유대인들이 사바지오스를 제우스와 동일한 신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만군(萬軍)의 주신(主神, The Lord of Sabaoth)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사바지오스 Sabazios항목]

 

그리스 문화에 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그들의 정신적인 고향이며 지도력으로 생각하여 예루살렘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고, 성전과 성직자들을 후원했다. 팔레스타인 안에서는 여호와에 대한 제사는 오로지 예루살렘에서만 거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므로, 종교적 회당(會堂) 즉, 시나고그(synagogue)가 디아스포라에서 생겨났으며, 그것은 팔레스타인으로 역수입되었다.

실제로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에도 유대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나고그를 통해서였으며, 이 회당 조직이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성전이 파괴되기 전 그리고 파괴된 후 얼마 동안도 이집트에는 오니아스(Onias)가 세운 성전이 있었으나 오니아스의 성전은 주변의 지역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고 이집트 전체 유대인을 위한 종교 중심지의 역할조차 하지 못하였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회당이 있었지만 모든 희생 제사는 예루살렘에서만 드릴 수 있었다. 헤롯 아켈라오 통치시에 이스라엘 밖에서 많은 유대인이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였다고 요세푸스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 절기에 많은 유대인이 모이면 자연히 헤롯 가문이나 로마 통치자에 대한 반감 때문에 소요가 일어나곤 했다.[유대인 연대기 17권 214절]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비록 팔레스타인밖에 살고 있었으나 때때로 팔레스타인의 정치 상황을 간섭하기도 했다. 헤롯 아켈라오가 로마 황제의 인가를 받기 위해 로마로 건너갔을 때에 유대인의 대표 50 여명이 로마로 가서 아켈라오의 잔인성을 폭로하며 황제에게 그를 고소했다. 그때의 유대의 대표들은 헤롯 가문의 통치보다는 차라리 시리아의 속국이 되는 것을 택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때에 로마에 거주하던 8천 명 이상의 유대인들은 이 대표단을 지지했다고 한다. [유대 전쟁사 2권 80절] 헤롯은 그후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온갖 정책을 폈다고 한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디아스포라를 통하여 최초로 반(反)유대인적 풍조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의 민족적 배타성, 경제적 번영, 특권들 때문에 많은 도시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 혐오가 퍼졌다.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체사레아 등지에서 반 유대인 폭동이 일어났고, 법정에서는 유대인에게 무거운 벌금이 부과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끊임없는 반목이 계속되어 결국 칼리굴라의 박해로 이어져, 학자 필로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로마 법정에 박해의 중지를 호소했는데 이 박해는 칼리굴라의 암살로 끝났다. 반 유대적인 편견(偏見)은 키케로, 페르시우스, 세네카, 퀸틸리아누스, 타키투스 등 로마의 문학가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2000년을 두고 전 유럽과 중근동(中近東)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 집요하고도 비이성적인 반유대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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